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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Aug 20. 2016

자네는 그럼 뭐 하고 노는가?

그러게. 나 뭐하고 놀지

면접 하나를 봤다.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적을 이력이 없어 내 브런치를 소개했다. 내 글 중 독서 정산에 관한 글을 보시고 독서량을 물으셨다. 그럼 독서 빼고 뭐 하고 노냐는 질문에 특별히 답할 게 없었다. 독서는 내게 '놀이' 성격이 아니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로 읽고 집에선 잘 안 읽는다. 그렇다고 집에서 딱히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면접 후 출근할 생각보다 퇴근하고 뭐할 지를 생각하게 됐다. 


집에 돌아와서 시간을 어떻게 쓰나 봤다. 뭔가 하는 것 같은데 막상 살펴보니 그냥 시간 태우는 중이었다. 서핑은 하는데 왔다 갔다 뒤적뒤적하는 정도. 노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그냥 때우고 흘리는 시간이었다.


뭔가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중식이 밴드>의 중식은 자기만의 음악 색이 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줄 알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알게 됐는데 20대 중반에 시작했다고 한다. 그냥 남들 게임하는 만큼 해서 쌓은 거라더라. 나는 게임도 안 하는데. 나도 남들 게임하는 만큼 뭐라도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놀이하는 인간이란 의미인데 사람은 놀기 위해 존재한다는 요한 하위징아라는 분이 이야기했다. 우리의 삶을 보면 어렸을 땐 '놀이'로 가득 차 있고(물론 요새 한국 대부분 어린이들은 공부해야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놀이가 계속 삶에 붙어 있다. 게임, 대화, 운동, 창작, 음악 등등은 모두 놀이적 성격이 있으니.


시대는 발전하고 세상은 편리해진다지만 갈수록 놀기 어려운 시대가 된 느낌이다. 실제 하루에 가용 시간이 그리 많진 않다. 9-6시는 못 쓰고. 통근 왕복 시간을 3시간으로 잡고.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면 내게 3시간 정도 있었다. 아직 일을 놀이처럼 하는 상태는 아니니 놀이적 성격을 지닌 무언가를 삶에 두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내 인간 됨을 위해서는 놀이가 필요하니.


평범한 직장인이 게임을 3시간 이상 하긴 어려울 테다. 주어진 시간은 대개 비슷할 테다. 모든 시간을 생산적이며 자기 계발적으로 사용할 것까진 없지만 굳이 소모적으로 쓸 이유도 없다. 그 시간에 할 수 있으면서 재미를 느끼게 하고 발전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내가 뭔가 시작해보고 싶어 해온 목록들을 한 번 쭉 적어봤다.



1. 코딩_ 몇 년 전부터 배우고 싶단 소리만 했다. 코딩 쪽 전공인 친구 둘에게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적도 있다. 종종 이 친구들이 언제 코딩 시작하냐고 물을 때면 할 말이 없어진다. 코딩 관련 그룹도 가입해놓고 눈팅만 한 지도 꽤 됐다. 슬슬 배울 때가 다가오는 건가 싶다. _ https://opentutorials.org/course/1 생활코딩 이란 곳에서 영상을 하나씩 보도록 하자고 정했다(16.08.17).


2. 드로잉_ 어릴 때부터 낙서를 좋아했고 뭔가 그리는 걸 배우고 싶어 했다. 중학교 땐 친구에게 원피스나 블리치 모작해서 주기도 했다. 여행지 같은 데 가서 크로키를 하는 것도 해보고 싶다. 나만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 원펀맨 ONE 작가처럼 만화 혹은 웹툰 형식으로 그려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https://www.facebook.com/jessoo0721/posts/1243357092381882 _ 재수의 연습장, 재수 님의 드로잉 수업이 열린 것을 봤다. 이미 마감이다. 10월에 들어보도록 하자(16.08.17).


3. 스쿼시_ 안 해봤는데 (몇 년 동안) 볼 때마다 하면 재밌을 것 같다. 내게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귀차니스트라서 집 근처 스쿼시 할 만한 가까운 곳이 어딨는지도 안 알아봤다. 이제 알아봐야지. _ 5분 거리에 있구나. _9월 혹은 10월에 가야겠다(16.08.17).


4. 수영_ 바다 놀러 가거나 수영장 있는 곳에 가서 잘 놀아야지. 물 무서워하는 것도 극복해야 하고. 언제 또 덕택에 내 생명 건지거나 남 생명 건질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프리 다이빙까지 할 수 있으면 재밌는 경험이 더 늘지 않을까.


5. 사진_ 잘 찍고 싶고 잘 보정하고 싶다. 여행 가서 초반엔 대충 찍고 걸어 다니려 했다. 지내다 보니 이왕 찍을 거 잘 찍는 게 무조건 낫더라. 사진 관련 능력이 있다면 다양하고 유용해 보인다. 어디 가서도 멋지게 남길 수 있고, 조금만 실력 키우면 그 자체로 용돈도 벌 수 있고. 사진 어느 정도 찍고 만지게 되면 서울 돌아다니며 찍고 서울 에세이 써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_ 듣고 싶은 강의가 있는데 10월에 들을 듯(16.08.17).


6. 영상_ 여행 가서 적당히 괜찮은 영상 찍고 싶다. 여행지 가서 컨셉 있는 여행 영상 찍으려면 애초에 구상했어야 했다는 걸 가서야 알았다. 애프터이펙트 팍팍 잘 쓴 영상들 보면 우오오 하면서 만들고 싶어 진다. 강의 따라서 한두 개 만들어 봤다. 어떤 과정인지 알게 되니 다른 영상들을 보곤 넘사벽을 느낀다(...) 그냥 디자이너 분에게 맡기는 게 나으려나. https://www.youtube.com/user/wkwkwk1205 이분 거 보고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7. 언어_ 영어 원서 읽고 정보 흡수할 수 있을 정도(활자 중독인가;). 회화는 영어로 친구랑 진지한 주제를 심도 있게 또는 드립이 난무하고 빵빵 터지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는 간단간단한 정도로만. 다음에 다시 갈 땐 친구들 좀 더 사귈 수 있게.


8. 젬베. 드럼. 피아노. 기타. _ 기타는 매번 치려곤 하는데 재밌으려 하면 식고. 피아노는 8년 전에 잠깐 배웠지만, 매일 칠 수 없으면 배울 의미가 없단 걸 깨닫고 전자 피아노 살 날을 기다리다 이 날까지... 젬베나 드럼 같은 타악기를 배우고 싶기도 하다. 


번외
9. 디자인_ 이건 살짝 감각에 관한 이야기긴 한데. 깔끔하고 세련된 PPT나 카드 뉴스 만드는 분들 것 보면 잘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몇 번 시도해보긴 했는데. 쓰다 보니 생각났다. 디자인은 맘 편히 디자이너에게 의뢰하자고 언젠가 마음속에서 결론 내렸다. (...)





올해 안에 이 중에 무언가 시작하겠지..? 근데 목록이 전부 솔로잉 종목이란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하다 보면 함께 즐길 무언가를 할 수 있겠지? 


혹시 배우고 싶었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흘려보냈거나 넘어갔던 게 있는가? 혹시 저거 하면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시도 못 해본 게 있는가? 혹시 하루에 나의 재미, 여유를 위한 시간이 있는가?


나처럼 무언가 삶에 놀이적 요소를 넣어야겠다 생각했다면, 배우고 싶었던 게 있었다면, 저거 하면 재밌을 것 같은 게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해보면 어떨까?


아. 내게 뭐 하고 노는지 물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덕분에 퇴근하고 뭐 할 지 생각했는데, 출근하고 일할 시공간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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