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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Mar 21. 2018

<리틀 포레스트>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영화 내용이 담겨 있으니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기회가 있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 못 봤지만, 감사하게도 <리틀 포레스트>를 보라며 선물 받은 영화 티켓으로 보게 되었다.


영화는 혜원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혜원이 '답'을 찾는 과정이 영화 전체의 흐름이다. 우리는 살면서 각자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가?' 등. 영화를 보며 그 답을 찾는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게 됐다.


나에게 온기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에서 고시를 준비하다 떨어진 혜원은 남자 친구만 붙은 걸 참을 수 없었고 지치기도 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잘 먹고 쉬는 것. 먹을 것이 없어 보이는 집에서 어떻게든 잘 해 먹는다. 서울에서는 잘 먹지 못 했다. 농담반 진담반 잘 먹고 싶어 돌아왔으니.


혜원은 한밤 중 사람 비명 소리 같은 고라니 소리에 무서워한다. 무섭지만 전화할 곳이 없다. 즐겨찾기에 몇몇 가족도, 남자 친구도 있지만 의지할 곳은 없다. 


다음 날 강아지를 데리고 온 재하. 밤에 혼자 자면 무서울까 봐 데려왔다. 혜원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고 준비했다. 작은 강아지가 무슨 도움이 되냐는 혜원의 말에 재하는 '온기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을 때 혜원에겐 온기가 없었다. 남자 친구에게도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 만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좋아했던 걸로 보이진 않는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에겐 온기들이 생겼다. 고향 친구 은숙과 재하, 큰 고모, 강아지 오구.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는 전기장판처럼 처음엔 그들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지만 얼어있던 혜원을 조금씩 따뜻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삶에 어떤 때가 되면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혜원은 고3 수능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독립하게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답을 찾는 중이다. 혼자 답을 찾기는 힘들고 외롭다. 당장 답은 몰라도 온기는 필요하다. 


자주 놀러 와서 함께 하는 친구들을 위해 혜원은 따끈한 떡을 만들어 준다. 온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을 기념하며.


나의 작은 숲은 무엇인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리틀 포레스트>, 곧 작은 숲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쉴 수 있는 것, 마음 쏟을 수 있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등. 혜원 엄마의 작은 숲은 자연, 요리, 혜원이었다. 작은 숲은 '답'의 씨앗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답은 아니다. 단지 '답'을 찾는 중에 꼭 필요한 곳이다. 쉬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혜원에겐 요리, 농사, 친구들로 보였다. 친구들과 요리하며, 농사하며 혜원은 쉬고, 배우며 답을 찾아간다.


요리 속 가르침

혜원은 엄마의 요리를 그대로 재현해낸다. 요리가 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뭐든 만들어낸다. 힘이 들어서, 사과하기 위해서, 파티하기 위해서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요리 때마다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에게 직접 배웠기 때문에 엄마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 요리만큼 엄마를 닮아 자존심이 세기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가르쳐줄 감자빵 레시피를 받았다. 그걸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자기만의 레시피대로 만든다. 가장 맛있는 감자빵을 넘어섬으로 모든 것의 독립을 하려 한다. 성장을 하려 한다.


은숙과 다툰 혜원. 원래는 자신에게 기분이 상해도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다. 자신이 옳으니깐. 이제는 그 가르침을 넘어 복수와 차가움으로 풀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엄마에게 배운 요리에 사랑을 담고, 자존심은 접는다.


남자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미 헤어진 상태와 다름없지만, 확실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못 했던 축하를 한다. 


농사 속 교훈들

농사일을 하며 삶을 배운다. 봄 새싹은 그냥 주어지지만 감자는 노동과 땀이 필요하다.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잡초는 끊임없이 자라기에 계속 없애야 한다. 그래야 농사가 된다. 우리 인생에도 계속해서 해야, 되는 일들이 있다. 집안 일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폭우에 벼가 다 누웠다. 하늘이 할 일에 대적할 수 없음을 배운다. 그저 누운 벼를 세울 수밖에 없다. 벼가 누웠을 때 해야 할 일은 하늘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벼를 세우는 것이다. 입 놀릴 시간에 몸 놀리면 끝난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못 할 일들이 많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친구들

계곡에서 은숙이 가져온 인삼주를 마시며 걱정 없이 행복한 때를 보내는 셋. 답을 찾는 것보다 답을 찾는 중이 행복할지 모른다.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어떤 답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온기가 되는 것

혜원은 온기와 작은 숲 덕에 조금씩 성장한다. 폭우 속 비 맞고 떠는 오구를 다독이며 젖은 몸을 닦아준다. 온기가 필요했던 혜원이 이제 온기를 나눠줄 수 있게 된다.


내 삶의 아주심기는?

깊어진 겨울, 혜원은 답을 찾기 위해 떠난다. 도망친 게 아니다,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재하.


'아주 심기를 준비하고 있는 거야' 


양파는 씨를 뿌린 후 싹이 조금 나면 옮겨 심는다. 옮겨심기를 할 동안 잘 관리한 후 완전히 한 곳에 머무는 아주심기를 하면 추운 겨울을 견딜 힘이 생겨 결실을 맺을 수 있다. 혜원은 서울에서 고향으로 옮겨왔다. 고향에서 따뜻한 힘을 얻었다. 혹독한 겨울을 버틸 힘이 생겼다. 


혜원이 왜 서울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혜원이 어떤 '답'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혜원이 '답'을 찾아서 아주심기를 했단 결과와 이유보단 아주심기를 하기 전, 옮겨심기를 했던 과정이 내겐 눈에 더 들어왔다.


나는 지금 어떤 시기에 있을까? 일에 관해선 옮겨심기의 시기가 지났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직장을 옮기다 지금 다니게 된 곳을 만났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있고 싶은 곳이다. 


다른 부분은 어떨까. 동시다발적인 계절을 보내고 있다. 사람, 관계, 일상 등 봄이기도, 겨울이기도 하며 대부분은 옮겨 심는 중이다. 더 어렸을 땐 지금 나이가 되면 막연하게 안정적인, 아주심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10년이 지나도 아주심기란 쉽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아주심기를 꼭 해야만 하는 삶의 부분들이 있다. 옮겨만 다녀서는 결코 건강하게 있을 수 없는 부분들이. 뿌리내려 오래 있으면서, 차가운 바람도 맞고 뜨거운 햇볕도 받으며 쏟아지는 빗방울을 견뎌야 하는 때가 있다. 


설령 내가 덜 준비됐다 하더라도 끝내 버텨야 하는. 그런 부분들이 하나씩 많아질 때 옮겨 다니면서 피하지 않고 책임질 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 어른이 덜 된 것도 같지만.


혜원이 찾고 싶은 답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라고 본다. 내 나이 또래 많은 이들이 하는 질문일 것이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어떤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라고.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며, 어디에서 찾느냐고.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뜻하게 밥 잘 먹고 찾으라고.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마땅히 할 일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떨어진 토마토를 보고 낙심하거나 낙관하거나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실패를 애도할 수 있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한 나아갈 수 없다. 


죽은 과일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 심어 새 생명을 기다려야 한다. 섭리 속에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노력과 결과에 대한 겸손을 배운다. 그리고 다시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될 때까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영화 전체의 메시지도 좋았지만, 인상에 깊게 남는 건 재하였다. 재하가 보여준 모습은 와 닿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다. 저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많았다.


재하의 모습들, 특히 혜원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하나같이 의미심장했다. 단편적으로 느꼈던 재하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각 문단은 이어지기도, 개별적이기도 하다.


자기의 답을 찾아 자기 할 일을 하는 재하는 이미 어른이었다. 재하라고 어려운 부분이 없을까 싶다. 다만 삶의 중요한 부분들에 아주심기가 끝났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단단해 보일 뿐.


재하는 혜원의 아주심기를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돌아올 때까지 오구를 보살폈다. 남의 아주심기를 도우려면 자기가 먼저 답을 찾은, 아주심기가 끝난 사람이어야 한다.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돌아오길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재하는 아주심기 하기까지, 혼자 답을 찾아야 했다. 많이 울었고, 힘들었다. 그리고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때 다져진 토양 덕에 답을 찾고 돌아올 혜원의 아주심기를 도와줄 수 있었다. 먼저 겨울을 보내본 사람이, 누군가의 봄이 오길 도울 수 있다. 각자의 다른 계절일수록 서로 도와야 한다. 봄이 먼저 온 사람이 겨울인 사람을 돕고 때론 같이 있음으로 온기를 머금어 겨울을 보내고.


재하는 자기가 선택하는 삶을 선택했다. 서울의 삶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한 길을 선택했다. 마음이 편하다는 건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자신의 선택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삶. 재하는 기다리기로 선택했다. 재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음은 요동쳤을지 몰라도, 묵묵히.


재하는 혜원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혜원은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열심과 바쁨으로 얼버무렸다. 아픈 데를 찔린 혜원에게 재하는 태풍에도 견딘 사과 하나를 건넨다. 그 힘든 시간을 끝까지 버틴 사과를.


재하는 혜원의 어렸을 적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혜원 자신도 몰랐던 일들까지도. 재하는 혜원이 왔을 때부터 혜원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했다. 재하는 혜원을 오래전부터 마음에 뒀을지도 모른다. 여러 상황에 마음을 묻어뒀지만, 혜원이 나타나자 묻었던 마음을 조금씩 꺼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때에 맞춰 농사하듯 재하는 마음을 여는 것에도 섬세했다.


재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소심해서일까? 계기가 있다면 먼저 자연스레 표현했다.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보채지 않았다. 자연의 타이밍이 보챈다고 빨라지는 게 아니듯. 때에 맞게 움직일 뿐이다. 말하는 것은 혜원의 몫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마음에 조급함이나 불안한 마음이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재하는 혜원을 기다렸을 것이다. 끝내 혜원이 아니어도 좋은 인연을 만났을 것이다. 혜원도 그랬겠지만.


재하와 둘이 술자리를 가질 때 혜원은 막걸리는 으스스한 추위에 마셔야 한다며 문을 열어뒀다. 춥다며 문을 닫은 재하. 무서워하고, 추위를 바라는 혜원에게 재하는 안도와 온기를 준다.


재하는 어떻게 혜원이 돌아올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재하는 자신이 바라는 바가 이뤄질 것을 기대하면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둔다. 이뤄지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사과를 열심히 심었지만, 태풍을 맞았을 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할 일을 시작했던 것처럼.


재하의 전 여자 친구가 고향에 들렀을 때 은숙과 혜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상황이 됐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내려올 거라고 말한 혜원. 할 것을 다 하고 나서야 만날 수 있는 타이밍이 있다. 혜원은 아주심기를 하고 나서야 타이밍이 생겼을 것이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언젠가 만날 수 있게 혜원은 돌아왔고 재하는 기다렸다.


기다려야 때가 있고, 도와주어야 때가 있고, 같이 있어야 때가 있고, 포기해야 때가 있다. 그때에 맞게 일을 하는 것이다. 혜원이 오자 오구를 데려오고, 오구 집을 만들고, 혜원과 친구로 지내고, 혜원을 걱정하며 때로는 쓴소리도 하고, 아주심기를 하러 오기까지 오구를 보살피며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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