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Oct 18. 2015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을 읽고

발터 벤야민이 쓴 공부법이 아니었다

발터 벤야민이 쓴 공부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흑. 발터 벤야민 하면 언제나 '아우라'가 생각난다. 전공 덕에 <예술 사회학>이나 <영화 사회학> 강의 때 자주 접한 분이다. 이 책에서 도대체 벤야민이 누구냐를 정의 내리지 않아서 나도 여기선 학자나 작가 등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라는 책을 읽곤 거의 이해 못 했지만, 뭔지 몰라도 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 보통이 아니라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직접 본 모나리자와 핸드폰으로 본 모나리자는 그림 자체는 같지만 다른 건데 그게 왜 다른 거냐를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하게 진행된 생각의 과정이 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지 면면을 뽑아 분석한 것이다.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거창한 의미를 뽑아낼 수 있는 게 철학 같단 생각을 했다.


방금 숨 쉰 것에도 사실 심오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저자가 누군지 잘 안 보고 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저자는 분명 철학을 공부한 사람일 거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면 벤야민이 한 행동 하나하나에 무척 심오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가 어릴 때 찍힌 사진에서 저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함으로써 자신들이 놓여 있는 상태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불편을 드러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생각 기저에 정말 불안과 불편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쳐도 그런 표현 방식은 내 생각엔 굉장히 과잉 해석이 아닐까 싶었다. 


예를 들면 영화평에 감독이 의도했을 법한 것들을 모두 열거한 것이 있다고 치자. '이 소품을 쓴 이유는 정치적인 무언가가 쭉 담겼고, 그때 그 씬이 의미하는 바는 감독의 유아기의 경험이 짙게 녹아 있으며, 클라이맥스 때 배우의 탄성은 감독의 철학의 진수인 다다이즘의 꽃이라 볼 수 있는 블라블라.' 감독이 이걸 보고 '와 이 사람은 내 의도를 완전 다 알았구나!' 할 수도 있지만 '.... 전다...;;' 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감독은 의도한 게 아니지만 감독의 생각 흐름엔 평에 담긴 내용들이 실제 있었을 수도 있다. 맞고아니고 보다는 내겐 그냥 과해 보이는 게 불편하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공부법'보다는 그의 삶 전반과 그에 대한 찬가


벤야민이 직접 공부법에 대한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그저 그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이 책 전반이다. 발터 벤야민을 향한 찬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공부법을 알고 싶었지 벤야민의 삶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내겐 지루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의 삶과 그가 머문 도시와 그가 했던 행동과 그가 보았던 것들과 그가 좋아한 것들과 그가 사랑한 이를 모르고서는 그의 공부에 대해 논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어서 그랬겠지만.


나와 정말 맞지 않아 힘들었다. 혹은 내가 철학적인 내용과 안 맞거나 이 책이 내가 읽기엔 어려웠거나. 그런데도 나름대로 배울 점들을 얻었다.


일부러 길을 잃고 헤매는 여행법


벤야민은 굉장한 길치였다고 한다. 지도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무기'로 삼았다. '길을 잃고 헤매기'를 통해 공부한 것이다. 약점을 무기로 바꾸었단 점과 길을 잃는 여행이란 점이 놀랍다. 그에겐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야 진짜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길을 헤매는 능력은 삶을 여행처럼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여행지 지도가 만든 가공된 코스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삶으로 닦아놓은 길을 가게 해준다. 여행을 삶처럼. 


이 능력은 길을 못 찾는 길치일수록 갖기 쉽다. 왜냐면 길치들은 가던 길에서 한 골목만 벗어나도 새로운 길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고 가도 길을 잃는 게 길치이다. 이들이야말로 삶을 여행처럼 살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이 탑재되어 있다. 이것을 활용하려 할 마음만 있다면.


벤야민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


또 하나 배운 것은 글쓰기. 그에게 글쓰기는 그가 배운 모든 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도 내가 살면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가능한 글에 녹이려 한다. 글감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쓰면서 내 것이 되는 경험이 좋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읽어도 책이 말하는 바에 관해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가 필요한 것을 보고 얻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얻어낸 것을 글로 썼고. 


' 그는 "어떤 생각도 자기도 모른 채 흘려 보내지 말 것이며, 외국인 등록 일을 담당하는 관청처럼 자신의 노트를 엄격히 관리할 것"을 주문하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펜을 뻣뻣하게 굴릴 것"을 요구한다. "말은 생각을 정복하지만 글은 그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


글을 쓰면서 자신이 배운 것을 계속 사용하고, 사용할 것이 떠오르지 않으면 글 썼던 것을 다시 보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다시 글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으면 또 글을 쓰는 반복. 글쓰기는 하루도 거르지 말아야 하지만 다시 보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된다고 했다. 그래야 객관성을 가질 수 있으니. 


벤야민은 훌륭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확실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일견 알겠다 싶은 게 있다.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그럴 때가 분명 있다. 확실히 아는 게 아닌데, 준비한 게 아닌데 그 이상으로 말할 때가 있다. 괜히 더 아는 것처럼 쓰려 할 때가 있다. 그런 말과 글엔 힘이 없다. 그냥 거품이 끼었을 뿐이다.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적어내는 것, 내가 생각한 것을 담아내는 것이 솔직함이며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실력임을 생각한다. 


책 상당 부분이 내겐 꽤 어렵고 지루하며 버거운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숨은 진주처럼 담긴 내용이 있었다. 벤야민이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에 집중했으면 좋았겠다. 계속 그의 삶과 거취와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로 채우기 보다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