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의 말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저런 '척'을 좀 잘하는 편이다. 몰라도 아는 척, 화가 나도 괜찮은 척, 돈이 없어도 있는 척... 이런 '척'은 일시적인 만족을 준다. 운이 좋을 때는 자기 최면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을 하다 보면 어쩐지 내가 똑똑한 사람 같고, 화가 나도 괜찮은 척 웃다 보면 마치 달라이 라마라도 된 것 같다. 뭐, 돈이 없어도 있는 척한다고 해서 빌 게이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척'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효과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 누구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내가 그리 똑똑하지도, 마음이 넓지도, 돈이 많지도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척'의 결과는 늘 공허하다. '척'의 강도와 횟수에 비례하여 마음의 내상 또한 커지고 만다.
이렇게 혼자 하는 '척'말고 함께 하는 '척'도 있다. 바로 '연인인 척'이다. '척'은 바로 그 '척'을 하는 부분에 결핍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연인인 척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연인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척'을 하는 데는 의도가 있다. 때로 그것은 놀이가 되고 연극이 되고 비즈니스적인 쇼가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짜 연인 행세를 하다 진짜 연인이 되는 클리셰가 종종 등장한다. 어떨 때 가짜 연인이 필요할까? 집에서는 당장 선을 봐 결혼하라고 야단인데 남자는 결혼 생각이 없다. 좀 더 자유로운 싱글 생활을 즐기고 싶다. 남자는 가짜 연인을 만들어 집안 행사에 데리고 간다. 가짜 연인 덕분에 남자는 선을 보라는 압박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겠다. 또 이런 상황은 어떤가. 전 남친이 어느 날 청첩장을 보내왔다. 찌질한 네 놈한테 차인 것도 억울한데 나보고 축의금까지 내라고? 복수를 하고 싶은 여자는 전남친보다 열 배, 아니 백배쯤 잘난 가짜 연인을 데리고 결혼식에 간다. 가짜 연인은 역할대행업체를 통해 구하거나 오며 가며 만난 사람, 평소 알던 지인이 될 수도 있다. 가짜 연인인 척하던 두 사람은 서로 티격태격하다 오해하고 상처 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예상했던 바와 같이 마침내 진짜 연인이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았더란다.
꽁냥꽁냥 애들 장난 같은 가짜 연인 말고 다른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19금도 아니고 39금쯤 되는 등급으로 말이다. 설마 이 글을 읽다 슬슬 재미가 없어 스킵하려던 당신이 39금이라는 단어에 눈이 똥그래져 기대감을 품고 계속 읽는 건 아닐 거라 믿는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연인'의 의미는 이렇다.
연인[戀人]
서로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한자 '연(戀)'에는 '사랑하다, 사모하다'는 뜻 외에 '간절히 그리워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연인인 척하고 싶은 어떤 마음 안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싶은 바람이 깊이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 애절한 감정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39금의 가짜 연애에는, 그래서 상처가 존재한다. 사랑받지 못한 아픔, 사랑을 잃은 슬픔,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이 있다. 그 깊은 상흔이 몸속 세포에 각인되어 밤마다 통증을 낳는다. 한 방울의 알코올이라도 수혈하지 않고는 잠이 들 수 없다.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I Have to Buy New Shoes)>의 주인공 아오이(나카야마 미호 분)도 그렇다. 낯선 나라 프랑스에서 결혼하고 이혼하고, 5살 아들마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5살 아들이 데려온 고양이 '구루'마저도 아들이 죽은 후 집을 나가 3년째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아침 아오이는 전 세계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는 모차르트의 <미뉴엣과 트리오>를 피아노로 연주한다. 혹시나 구루가 이 곡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진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기대를 담아... 그런 아오이의 삶에 어느 날 불쑥, 얼떨결에 파리 여행을 오게 된 남자 센(무카이 오사무 분)이 들어온다.
우연히 며칠을 함께 보내며 마음이 열린 아오이는 센에게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꺼내놓는다. 때로 나를 잘 아는 친구보다 오늘 처음 본 어떤 이가 아픈 상처를 털어놓는 대상으로 더 적합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어렵게 꺼낸 상처를 마주하게 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란 그저 안아주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센도 그랬다. 센은 차가운 거실 바닥에 이불을 돌돌 감고 누워 아오이를 안아준다. 아오이는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웠으리라.
센의 품에 어색하게 안겨 아오이가 말한다.
"더..."
"네."
센이 아오이를 더 꽉 안는다.
"더 세게 안아줘요."
"네."
센이 아오이를 좀 더 꽉 안는다.
설사 아오이를 이끈 것이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었을지라도, 젊은 남자를 향한 하룻밤의 유혹이었을지라도 나는 아오이를 지지한다. 신의 형상을 닮은 고상한 존재라 하지만 인간에겐 몸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실체가 있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위로보다 눈에 보이는 몸의 위로가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다. 독감에 걸렸다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센 강 유람선이 퐁 마리 다리를 지날 때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단, 조건이 있다면 연인들의 소원이어야 한다는 것. 아오이와 센이 탄 유람선이 퐁 마리 다리에 가까워오자, 센이 말한다.
"그럼... 연인인 척해볼까요?"
두 사람이 연인처럼 손을 꼭 잡는다. 유람선이 퐁 마리 다리 밑을 지난다. 두 사람은 그 순간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짧은 '척'이 끝나고 어김없이 공허함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위로가 필요한 어느 순간, 한 번쯤 연인인 척해볼 만하지 않은가. 간절히 그리워하고 싶은 마음을 꺼내 마음껏 그리워해 보는 거다. '척'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께 빌었던 소원은 남아 있다. 진심 담아 가짜 연기에 응해줄 상대가 옆에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