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비너스 전파사

by 조혜영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라는 영화가 있다. 라디오 드라마 제작현장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일본 영화다. 오래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영화 제목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인지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재미난 에피소드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고, 영화 속 대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출처 : http://movie.daum.net)

“라디오 드라마는 정말 매력적이죠. 제 생각이지만, TV 드라마에 없는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TV에서 SF를 하잖아요. 미국 영화에 지지 않는 영상을 만들려면 컴퓨터 그래픽에 엄청난 돈이 들죠. 하지만 라디오에선 내레이터가 ‘여기는 우주’라고 한 마디 하면 그냥 우주공간이 되는 거예요. 인간에게 상상하는 능력이 있는 한 라디오 드라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듀서(이 프로듀서가 라디오 드라마를 산으로 가게 만드는 장본인이지만)가 막 라디오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초보 작가에게 하는 말이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는데 이 대사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부족한 재주로 머리를 쥐어짜 내며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있는 내게 격려와 응원과도 같은 말이었다.

상상력, 무한한 가능성... 이런 단어들이 어쩌면 뻔하고 유치할 수 있지만, 그런 단어를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죽어있던 세포가 살아나고 심장이 조금은 젊어지는 기분이다. 최근 tvN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상상(想像)’에 대한 어원(코끼리 뼈를 가지고 코끼리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것)을 감동적으로 들을 터라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노트북 앞에서 혼자 대본을 쓸 때는 이 드라마가 어떻게 표현될지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짐작해볼 뿐. 등장인물들이 잘 만들어졌는지, 등장인물이 하는 대사가 그 캐릭터에 잘 맞는지,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진 않은지... 쓰는 동안 나름의 공력을 다하긴 하지만, 결국 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성우들이다. 라디오 드라마 녹음 현장에서 성우들의 연기에 늘 감탄한다. 성우들의 연기와 음악, 음향, PD의 연출이 대본의 부족한 빈 곳을 꽉 채워 준다. 그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코끼리의 뼈대’가 만들어지고, 라디오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직은 초보 작가인 나의 두 번째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제목은 <비너스 전파사>. 꿈도 사랑도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무언가 어긋난 것 같은 인생에 삶의 주파수를 맞춰줄 마법이 시작된다면 어떨까. 공감과 치유, 믿음과 사랑... 삶의 어두운 터널을 건너게 해줄 마법 같은 마음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야기의 씨앗은 내게서 시작됐지만, 끝은 성우와 스텝들을 거쳐 청취자들의 마음에서 완성되지 않을까.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는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운전 중인 유조차 운전사가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영화 말미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린, 말도 안 되는 드라마에 감동받아 유조차를 몰고 방송국으로 온 운전사는 라디오 드라마 제작에 회의를 느낀 프로듀서와 피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방송국 사람? 방송국 사람? 오늘 밤 드라마 굉장했어요. 이런 건 처음인데, 악수... 악수! 악수!”

그 말에 힘을 얻은 ‘방송국 사람들’은 다시 다음 드라마를 구상하게 되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CBS 정혜윤 PD가 <마술 라디오>라는 책에서 한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출처 : http://book.daum.net)


나는 오랫동안 언젠가는 라디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어... 나는 라디오의 ‘온에어’ 빨간 불빛을 좋아했어. (중략) ‘온에어’. 나는 사람의 뇌나 내장에서 나온 생각이 발성기관을 통해서 혀끝을 맴돌다가 입 밖으로 나와서 하늘에 올라가 반사되었다가 다시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을 ‘온에어’라고 이해해. ‘온에어’를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몇 안 되게 일어난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야. 나는 입사하고도 몇 년간이나 그것을 이해 못했어. 어떻게 말이 하늘에서 빛이 되었다가 내가 모르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지.


우리가 만든 라디오 드라마가 전파를 타고 하늘에서 빛이 되었다가 우리가 모르는 사람, 당신의 귀에 들어가는 신비를 꿈꾼다.


<KBS 무대> http://www.podbbang.com/ch/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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