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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Aug 02. 2021

차근차근 천천히


++ <월간 에세이> 2021.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최근 3,4년 사이 두 번이나 왼쪽 발에 깁스를 했다. 첫 번째는 바삐 걸어가다가 움푹 파인 길에서 발을 접질렸고, 두 번째는 깜박이는 초록색 신호등을 보고 급히 뛰어가다 횡단보도 앞에서 넘어졌다. 두 번 다 발등에 금이 갔고 8주 정도 깁스를 한 채 지내야 했다.


당시 주말을 제외하고 주 5회 요가원에서 수련을 했기에 깁스의 불편함보다도 요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몇 년 간 꾸준히 수련을 해오며 어려운 동작을 익히고 있던 터라 쉬는 동안 몸이 굳어버리거나 근육이 줄어들까 봐 걱정됐다. 그동안의 노력이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쩐지 부상을 입은 운동선수의 마음이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깁스를 풀고 3개월 만에 요가원에 간 내게 요가 선생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혜영 님, 자꾸 발을 다치시는 걸 보면 혹시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혜영 님이 걸을 때 보면 발보다 상체가 더 먼저 나가는 것 같아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다 친구에게 걷는 모습을 옆에서 한번 봐 달라고 했는데, 역시나 발보다 상체가 반보 앞서 나간다고 했다. 발을 움직이는 속도보다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 앞섰던 걸까.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려고 얼굴과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뛰어 들어오는 달리기 선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급하게 앞서 나가는 상체의 속도를 발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접질리거나 넘어졌던 모양이다. 금메달을 따야 하는 달리기 선수도 아닌데, 대체 뭐가 그리 급해서 발보다 상체가 먼저 앞서 나갔을까.  

 

언젠가부터 세상살이에 조급함을 많이 느끼긴 했다. 바라는 결과를 빨리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는 먹어 가는데 제대로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성실함까지는 좋았지만, 마음은 달리는 버스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과정을 즐기기보다는 결과만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요가를 하면서도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게 아니라 어려운 동작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난이도 높은 동작을 완성시키는 데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시간 대비 더 쉽고 빠르게 결과를 얻고 싶었다. 


붓다는 이런 마음을 ‘갈애(渴愛)’라고 불렀다. 목이 마른 이가 애타게 물을 찾듯이 탐내어 집착한다는 뜻이다. 집착을 내려놓고 대상에 초연해지라는 성인들의 말씀이 목마른 내게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물을 찾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싶을 뿐. 하지만 조급한 마음은 갈증을 채워줄 생수 대신 짠 바닷물만 연신 마셔대고 있다. 이런 마음을 나의 걸음걸이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나 보다.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아흔 살의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는 말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시간을 모아서 천천히...”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내레이션도 인상적이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가 여물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땅이 비옥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하나씩 해나가야겠다. 걸음을 걸을 때도 상체가 먼저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한 발 한 발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천천히 내딛으려고 한다. 그렇게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어딘가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곳이 내가 도착하고자 했던 목적지가 아닐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천천히 걸어가는 방향이라면 분명 그곳은 원래 가고자 했던 목적지보다도 훨씬 멋진 곳일 테니까. 


달리는 버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제자리 뛰기를 한다고 해서 버스가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흘러가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거나 버스에 함께 탄 사람들의 온기를 느껴보는 일이 더 값진 순간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차근차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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