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란시스 하>는 주인공 ‘프란시스’의 홀로서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뉴욕에서 무용수로 성공하고 싶지만 프란시스의 현재는 그저 연습생일 뿐이다. 사랑도, 우정도, 일도 모두 쉬운 게 없다. 월세를 낼 돈이 부족해 이곳저곳 친구 집과 기숙사를 전전하며 생활하는 중이다. 몸과 마음, 편안히 머무를 곳이 어디에도 없다. 스물일곱 청춘 프란시스는 외롭고 쓸쓸하다. 활기차고 씩씩한, 어딘지 과장돼 보이는 겉모습은 공허한 내면을 감추기 위한 가면일지도 모른다.
좌표 없이 왔다 갔다 하던 프란시스는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고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로 다시 태어난다. 작은 시작이다. 그리고 홀로 머무를 방도 생겼다. 이 영화의 제목은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문패를 쓰게 되면서 일어난 해프닝을 아이러니하게 포착한다.
방황하던 프란시스는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방황을 통해 진정한 방향 감각을 얻을 수 있다면 사막에서는 방황이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방황이 일종의 성년 의례로, 젊은이는 혼자서 사막을 헤매고 다니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자기 인생에서 나침반 바늘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김영사, p.51~52
‘방황’이 프란시스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엔 스마트폰 지도 앱만 있으면 낯선 도시 어디서든 길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막에서라면 어떨까. 사막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길을 따라 지도를 그렸다 하더라도 센 바람이 한번 불어닥치면 길은 다시 모래로 뒤덮이고 만다. 그 순간, 앞서 간 이가 만들어 놓은 지도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되든, 나침반을 믿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 텍쥐페리도 <사막의 죄수>라는 책에서 "나는 지도를 보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라고 말했다.
프란시스의 방황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친구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음을 처절하게 확인한 후에야 끝이 났다. 친구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던 그녀가 가장자리로 내몰린 순간이었다. 불확실한 가장자리에서 그녀는 혼자가 되었고, 고독의 시간 속에서 결국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 마음속 나침반이 방향을 알려준 것이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재능이 무용수로 무대 위에 설 때가 아닌 안무가로 무대 뒤에 있을 때 더 빛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용기 있게 그 자리로 돌아가자 그녀만의 문이 세상을 향해 열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을 찾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현재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있더라도, 사막 한가운데서 지도 없이 길을 잃었더라도 겁먹지 말자. 대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는 거다. 자신의 마음 안에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지만 성능 좋은 나침반 하나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마음의 나침반이 당신만이 가야 할, 당신이기에 가야 할 그 방향을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