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집>, 우리집이라는 환상

윤가은 감독이 만들어내는 다정하지만 서늘한 시선

by 조혜영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따뜻하고 힐링되는 영화?


영화 상영이 끝나고, 배우와 감독의 짧은 인사로 이루어진 GV 자리에서 '우리' 사랑스러운 아역배우들이 관객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영화, 따뜻한 영화인 거 같죠?"

"마음의 힐링을 받을 수 있는 영화예요..."


아역배우들의 말처럼 영화 <우리집>은 정말 그런 영화일까? 따뜻하고 힐링이 되는 그런...?

영화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보는 내내 다정한 미장센에 빠져들었고 아역배우들의 감정선에 몰입됐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솔직한 내 심정은 따뜻하기보단 서늘했고, 힐링을 받기보단 힐링이 필요해졌다고 할까.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다분히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나에게 영화 <우리집>은 잔혹동화 혹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리얼리즘 영화의 '프리퀄'처럼 느껴졌다.


영화에는 세 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엄마 아빠의 이혼을 막고 화목한 가족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12살 하나, 이제는 더 이상 이사 가지 않고 한 곳에서 살고 싶은 10살 유미와 유미의 동생 7살 유진.

같은 동네에 살며 친구가 된 하나, 유미와 유진 자매는 여름방학 동안 '우리집 지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들에겐 우리집을 지키는 것이 또 다른 방학숙제인 셈이다.

각자의 이유로 '우리집'을 지키기로 하며 친구가 된 하나와 유미, 우진 자매(출처. 다음 영화)
세 아이들의 특별한 방학숙제?
우리집을 사수하라!


하나는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가족여행을 끈질기게 밀어붙인다. 엄마 아빠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과거 어느 날, 하나의 가족은 바다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 아빠가 자신과 오빠를 잃어버렸고, 다시 찾는 과정에서 가족의 관계가 회복됐던 것을 하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가족여행만 간다면 엄마 아빠의 다툼도 멈추지 않을까? 우리집이 다시 화목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부모님은 바쁘다는 핑계만 대고 중학생 오빠 또한 여친을 만나느라 집안 사정은 뒷전이다. 하나는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직장 일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만들지만(달걀 요리나 김치볶음밥 같은 게 하나가 할 수 있는 전부이지만), 네 식구가 같이 식사하는 씬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엔딩씬에서도 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는 혼자서 밥을 먹고, 아빠는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우거나 술에 취해있고, 엄마는 기본적 의무만 다하는 것처럼 보일 뿐 가족의 식사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방을 돌며 도배일을 하는 부모님 때문에 유미와 유진은 어른 없이 둘이서만 지낸다. 가끔 외삼촌이 들르기도 하고 집주인 아줌마가 돌봐주는 것도 같지만 직접적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7살 유미가 기억하는 것만으로 유미네 가족은 이사를 6번도 더 다녔다. 유미와 유진은 더 이상 이사가 싫다. 한 동네에 정착하며 친구도 사귀고 싶다.

유미와 유진 자매 집 평상에서 자신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리집'을 만드는 세 아이들, 노을 지는 저녁 풍경이 다정하고 정겹다. (출처. 다음 영화)

지금 살고 있는 집 마당에 방울토마토도 심고,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물놀이도 하고, 하나언니라는 친구도 사귀었는데 엄마 아빠는 또 이사를 가려고 한다. 집주인 아줌마와 부동산 아저씨가 집 보러 왔다며 계속 문을 두드리는데, 하나는 유미와 유진 자매를 도와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이 집을 계약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며...

집 보러 왔다며 문을 두드리는 집주인 아줌마의 목소리에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세 아이들 (출처. 다음 영화)

아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부모님은 조만간 이혼을 하려 하고 유미와 유진의 집엔 곧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은 휴대폰도 받지 않는다.

하나는 유미와 유진에게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 보자며 제안을 한다. 유미는 부모님이 도배일을 하고 계신 곳이 00 해변의 호텔이라는 것밖에는 모르지만 하나언니와 함께 한번 찾아가 보기로 한다(사실 하나는 이혼을 하기로 한 부모님의 대화를 몰래 듣고 가출을 한 것).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낯선 시골버스에 오른 세 아이들 (출처. 다음 영화)
우리집 따위 개나 줘버려?


이제부터 영화는 부모를 찾아 떠난 세 아이들의 로드무비로 전환된다. 막내 유진은 언니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상자를 칠해 만든 '우리집'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겠다며 들고 나온다. 아이들은 낯선 곳에서 버스를 잘못 타 길을 잃고 '우리집'은 버거운 짐짝이 된다. 파도소리를 듣고 어느 해변에 이르지만 인기척 하나 없고. 세 아이들은 이미 망가진 '우리집'을 발로 뭉개며 감정을 폭발해낸다.


이렇게 생고생하며 지키려 했던 '우리집' 따위 그지 같아, 개나 줘버려~~~

(아이들의 대사가 이렇진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그랬을 거라는 내 마음의 소리다...)


인기척 없는 낯선 해변에서 밤이 되고, 이제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들 때쯤 너무도 우연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으려던 부부가 만삭인 아내의 산통으로 차를 타고 병원으로 떠나고... 텐트와 음식은 아이들 차지가 된다(기존의 영화에서라면 개연성 없는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마치 천사가 아이들을 도우려고 마법을 부린 듯한 사랑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텐트에 셋이 나란히 누워 아이들은 행복하다.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 갈등은 이미 온 데 간데없다. 여기가 우리집이었으면, 이렇게 셋이 여기서 함께 살았으면...

텐트에 누워 행복해하는 아이들 (출처. 다음 영화)

다음 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헤어지는 게 싫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동화는 끝났고 이들에게 닥친 건 이제 현실이다. 유미와 유진은 어쨌거나 이사를 가야 하고, 하나는 가출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며 엄마 아빠의 이혼 또한 달라진 건 없을 것이다.

유미와 유진도 '우리집(house)'을 지킬 수 없고, 하나도 '우리집(home)'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집으로 돌아간 하나는 텅 빈 집에서(모두 하나를 찾으러 나갔다), 네 식구의 밥을 준비한다. 식탁에 소소한 반찬과 밥이 차려질 때쯤, 집으로 들어온 부모님과 오빠가 하나를 보고 놀라고... 하나는 말한다.

"우리 얼른 밥 먹자. 밥 먹고 진짜 여행을 준비하자!"


아이들의 진짜 여행?


그렇게 영화는 끝나는데... 앞서 말했듯이 네 식구가 함께 밥 먹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은 채 갑자기 암전 되는 화면 속에서 나는 그만 서늘해졌다.


하나가 말한 '진짜 여행'은 당연히 가족여행이겠지만, 어쩐지... 나에겐 하나가 어른이 되어 가는, 그 과정에서 밥의 단 맛이 아닌 삶의 쓴 맛을 배우고 이겨내야 하는 '인생 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는 끝내 이혼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우리집이라는 환상을 내려놓고 현실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가족들에게 같이 밥을 먹자며 웃는 하나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그 예쁘고 순수한 마음이 다칠까봐...

하지만 하나는 밥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가 아닌가.


그래, 하나야... 이제부터 닥쳐올 고된 인생의 여행을 시작하려면 든든히 밥부터 먹어야 한다...

(꼰대처럼 나는 마음으로 하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걸까? 영화 속 하나의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매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미와 유진의 가족이 더 이상 이사 가지 않고 행복한 우리집에서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많은 걸 알고 있다. 이런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일 뿐이란 것을. 설사 그런 날이 오더라도 찰나의 행복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집이라는 따뜻한 환상을 붙잡은 채 머물러 있기보다는 다가올 삶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여름 햇살 가득한 사랑스럽고 다정한 영상 속에서도 세 아이들의 뒷모습이 힘겨워보였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신들의 다가올 인생을 바라보며 현실을 마주한 듯 한 아이들의 뒷모습 (출처. 다음 영화)

윤가은 감독은 전작 <우리들>에서 초등학교 소녀들 사이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다룬 바 있다. 그 영화에서도 감독의 시선은 따뜻했지만 냉정했고, 차가운 가운데 작은 희망을 이야기했다(주인공 선의 손톱에 가늘게 남은 봉숭아 물처럼).


<우리들> 만큼 <우리집>도 가슴 한 구석에 남는 영화가 되었다. 벌써부터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나는 윤가은 감독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그 세계 속의 아이들이 참 좋다. 세상을 배워가며 성장하는 아이들이 짠하지만 그게 인생이 아닌가. 그들은 분명 좋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걸 믿는다. 그 믿음이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긍정적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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