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보다 오래 남은 것

아버지와의 파인다이닝

by 출항일지

파인다이닝은 음식을 먹는 경험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엇을 먹는지보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 곳인가’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한 친구는 종종 파인다이닝에 가서 혼자 식사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재벌 아들들이나 할 법한 행동 같다고, 다소 날카롭게 말했다.
그 말이 거칠게 들리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과 거리감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에게 되물었다.
파인다이닝을 갈 수 있는 자격은 누가 정해주는 것인지를.

파인다이닝을 갈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누군가가 대신 정해줄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형편과 상관없이 미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경험해 볼 수 있는 식사일 수 있고, 관심이 없다면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다소 비싼 한 끼일 이다.


나에게 파인다이닝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경험해보고 싶면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그저 그 정도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파인다이닝은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증명의 공간이 아니라, 좋은 경험을 나누고 싶어질 때 떠오르는 하나의 선택지였다.
그러다 문득, 이 경험을 부모님, 동생과도 한 번쯤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족과 함께 파인다이닝을 경험하던 그날, 아버지의 반응은 왜인지 모르게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면서도 어딘가 조금 어색해 보이셨다.
나는 그저 아버지는 미식에 큰 관심이 없는 분이시니, 음식에 큰 감동을 받지 못하신가 보다 하고 넘겼다.

식사가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아버지는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기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 질문에는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닌, 여러 겹의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에 대한 어색함, 자식들만큼은 가난하게 키우지 않겠다는 평생의 목표, 그리고 그 공간에 비교적 익숙해 보이는 아들에 대한 말로 다 하지 않은 감정들이 겹겹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뒤 아버지는 덧붙이셨다.
와인 페어링 없이 식사만 하니 괜히 직원들의 눈치가 보인다고.
이왕 폼내러 온 김에 와인 페어링이나 음료수 한 잔이라도 시켰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 공간을 폼내러 온 것이 아닌, 미식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사람과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함께 보고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계셨다는 것을.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아팠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 같은 아버지의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고, 그것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날의 식사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와 동시에 실감하게 만든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걸어왔다.
하지만 그날, 나와 아버지는 이제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과, 처음으로 아버지를 뒤에 두고 가고 있다는 감각을 함께 실감했다.


그 사실이 기쁘기보다는 먼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버지가 평생 동안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자유와 그 덕분에 내가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자유가 이 한끼의 식사에서 또렷하게 대비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식에 관심 없는 아버지를 파인다이닝에 꼭 모시고 오고 싶었던 건,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자유를 내가 대신 드리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아버지도 언젠가는 그런 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그냥 편하게 식사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폼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은 순간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문득, 아버지께서 갑자기 내 프로필 사진을 보시며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네, 하고 웃으며 카톡을 보내셨던 날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덧붙이셨었다.
니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아버지의 그 말씀과 파인다이닝에서 지으셨던 표정은 이상하게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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