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후광 아래에서 달렸던 시간

그림자가 아닌 실체로 서고 싶었던 이유

by 출항일지

나의 첫 커리어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에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외부의 시선과 편견은, 가진 것 없던 24살의 초임 3등 항해사였던 나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부담을 감내하는 것 또한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무게는 나를 멈추게 하기보다는 더 빨리 달리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갖고 싶었던 확신.
그런 마음으로 달리다 보니, 운 좋게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1등 항해사로 진급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
나를 직접 겪은 분들 역시 나를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닌, 하나의 개인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외부의 시선과 의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학창 시절, 학생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지 않았던 나의 과거는 그 그림자를 더 짙게 보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떳떳했기에 그 시선들에 대해 굳이 해명하려 들지는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에는 편견과 의심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들의 시선은, 확신하고 있던 나조차 다시 의심하게 만들었다.
정말 나는 그저 아버지로부터 생긴 그림자였을까.
아니면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육상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기로 했을 때, 나는 익숙한 환경 대신 더 도전적인 환경을 선택했다.
아버지라는 후광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그림자인지,
아니면 그 빛을 받아 더 또렷해진 실체인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빛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실체라는 것을.
빛은 나를 설명하는 조건일 수는 있어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때까지 나는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걸까.
아직 그 답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증명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빛이 나를 또렷하게 해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빛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실체로 존재했기 때문임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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