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8일 수요일, 오름
날이 맑아서 오름에 올랐다. 고요했다. 대나무 숲 속에서 가만히 있기도 하고, 중간중간 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주변을 살폈다. 몇 주 전에 왔던 그 숲 그대로였다. 앞뒤로 오는 사람 없고 가는 사람 없어 자연 속에 오롯이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탁 트인 전경에 내 마음까지 탁 트였다. 팔랑이는 노란 나비는 꼭 길을 알려 주는 요정 같았다. 정상 정자에 앉아 눈을 감고 오 분간 심호흡했다. 휴대 전화로 듣던 자연 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눈을 감았다 떠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이고, 아직 비를 머금은 흙냄새가 나고, 날개를 펄럭이는 새소리가 들리니까.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날에는 바다에, 아무 소리라도 듣고 싶은 날에는 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내 마음을 듣고 있다 동조할 뿐이다. 산에는 제각기 하고 싶은 말들을 한다. 풀벌레 소리, 힘찬 펄럭거림, 찌르르 우는 새, 짹짹거리는 새.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한담을 한참 동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