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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Sep 08. 2021

제주 한 달 살이 (25)

2021년 9월 7일 화요일, 여행하는 마음

  바닷가에 있다가 택시 타고 집에 오던 때였던가. 택시 기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한 달 살이? 이제 슬슬 지겨울 때 됐을 텐데.” 속으로는 ‘며칠 살았는지 묻지도 않으셨으면서요….’ 라 생각했고, 겉으로는 “아직 재미있어요.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했다. 이상하게 그 기사님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지겨운 건 아니고, 계속 제주에 살고 싶은데, 종일 그런 생각만 하고 있게 만들던 날. 몸은 게으른 듯 게으르지 않은 듯 쓰면서 곧 가실 여유가 아쉬웠던 날. 짧은 시내 산책 외 별일 하지 않은 날이었다.


  일주일 내의 짧은 여행이 끝나갈 때는 다가올 이별 또한 빠르게 다가온다. 여행을 마치기 하루 이틀 전 “아! 벌써 내일이면 돌아가야 된다니!” 한다. 하지만 긴 여행의 이별은 스미듯이 천천히 다가오는 듯하다. 일정을 빡빡하게 채우지 않은 여행이라 더 그런 걸까. 가만히 창문에 반사되는 햇빛을 보고 있다가도 제주에 있을 날이 며칠 남았는지 세어 보고는 마음이 푹 꺼지곤 한다. 있는 날 동안 빈틈없이 행복했는데.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자꾸자꾸 아쉽고. 이럴수록 현재를 더 만끽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제주에 살면서도 마음을 지옥같이 사는 사람들은 제주가 지옥일 것이다. 어디에 살든 마음먹기 달렸다고 나를 달랬다. 머리를 툭툭 털어 말리고 침대에 누워서 스탠드 조명을 켰다. 노트패드를 펼친 뒤 제목을 적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간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나는 대로 주욱 적었다. 제주에서 습관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지키자. 제주에서 찾아 놓은 이너 피스를 깨트리지 말자. 제주에서……. 모든 내용이 제주에서 찾은 것들을 잃지 말자는 것이었다. 돌아간 뒤로는 내 자유를 잃을까 봐 펜스를 쳐 놓고 싶었다. 나를 보존할 울타리를.


  제주 살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제주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보려 새로운 제목을 적다 말았다. 뭘 하려고 하는 순간 아쉬움만 더 커질 것 같기에. 이제는 그만 아쉬워하기로 했다. 제주에서 찾은 자유는 유일한 자유가 아니고, 앞으로의 자유를 위한 자유일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매일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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