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회고록
이런 식으로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인생을 시작할 때 이런 일은 계획도 없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지.* 삶은 갈수록 힘겹고, 지겹고, 악의 투성이라, 올해는 기어코 그런 생각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아, 이럴 때 사람들이 죽으려고 하겠구나. 지금 죽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겠구나.
혼자만의 싸움이 지겹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잘 살아 보려고 하면, 버텨 보려고 하면, 세상사 다 좆같아도 보란 듯이 기운 차려 보려고 하면 되려 고꾸라지기만 했던 나의 2023년. 3개월의 휴직 후 복직할 마음을 겨우 다잡았을 때, 전 회사는 권고사직 통보를 했다. 아빠는 투병 중이었다. 손 쓸 수 없이 말라 버렸다. 나는 아빠의 병원비가 걱정되었고, 직업에 대한 자신감은 결여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고 있을 것 같다는 시선 공포증, 대인 기피증이 생겼었다. 설상가상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인생 첫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됐고, 나 엄마가 응급실에 계셔서 그런데 그때 빌려줬던 돈 좀 돌려줄 수 있을까, 아꼈던 친구에게 메시지 보냈더니 돌아오는 말은 "못 줄 것 같은데 어쩌지".
어쩌지, 하는 말이 그렇게도 미웠다. 왜 나한테 해결을 미뤄. 왜 나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 문제를 만든 것은 전부 내가 아닌데. 내가 사랑한 것들은 죄다 배신만 했다. 그 아무도 나를 위해 주지 않았다. 매사가 불안했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모든 기관이 불안정했다. 정신의학과와 심장내과에 찾아갔고 심리 상담을 받았다. 어느 병원이든 나에게 이상 소견이 없다 그랬다. 나는 내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 진단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내가 너무 이상하니까, 차라리 이상하다고 진단 내려 줬음 했다. 그런 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멸망에 도착하고 싶었다. 내 뜻대로 될 리가 없었고. 상담 선생님께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하라 하셨다. 그때 만나던 사람에게 내 상태를 이야기했다. 안아 주고 싶다는 말 한마디, 지금 보러 갈까, 나 이런 말 한마디만 있으면 된다 그랬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지금은 네 상태를 더 걱정할 때인 것 같아, 뭐 그런 말로. 웃기는 말이었다. 나만이 나를 살리려고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데. 모두 나를 내버려 둬도 나만은 그렇게 나를 안 버리려고 했는데. 병원이든 상담이든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하고 있었는데 내 상태를 더 걱정하래. 곁에 있는 사람 잃는 게 무서워 죽겠다는데 그렇게 나를 또 떠나.
4월 6일, 아빠가 죽었다. 모든 가족 중 나만이 아빠를 마지막까지 보내지 못했다. 엄마는 자꾸 아직 살아 있는 아빠더러 잘 가라는데, 나는 아빠가 숨 쉬지 않는 것 같으면 계속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일어나. 숨 쉬어야지. 벌써 가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된다는 말을 나만 그렇게도 많이 했다. 붙잡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붙잡아서 소용 있었던 적이 없는데 나는 또 붙잡았지. 입관 날까지도 그랬다.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은 아빠 손을 붙잡고 매만지면서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나 두고 가지 말라고 원망했다. 보내 드려야지, 채윤아, 하는 소리에 그냥 고개만 뚝 떨구고. 뼛가루가 된 아빠를 보고도 눈물이 안 나고. 이제 엄마 보호자는 완벽하게 내가 되었구나. 엄마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일까. 아빠 영정 사진을 들고 있기에 내 동생은 너무 어리다. 펑펑 울어야 속이 시원할 텐데. 나도 잘 울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자꾸 또 다른 사람 걱정.
아빠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정리되었다. 감히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 해도 될까. 미워 죽겠던 사람들도 장례식에는 와 줬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마음이 들어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을 모조리 불렀고, 그들은 모두 와 주었으며, 아무렇지 않게 안아 주면서 와 줘서 고맙다고,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물었더니 희한하게 증오심이 가셨다. 그제야 마음에서 떠나보낸 것이다. 장례 마지막 날에는 헤드헌터로부터 이직 제안 전화가 왔다. 자신 없어 그만두고 싶었던 개발자 커리어도 한 번은 다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계시를 받은 것처럼. 지체 없이 이직 준비를 했고, 생각보다 나를 원하는 회사는 많았고, 제안이 온 세 곳에만 지원하여 면접을 봤는데 세 곳 모두 합격했다. 그중 정말 많은 연봉을 제안한 회사도 있었는데, 연봉이 조금 덜하더라도 나와 결이 더 맞을 것 같다 생각한 회사로 이직했다. 메일로 이런 말을 적어 회신했다.
첫 이직은 곧 제가 쌓아 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더 쌓아갈 수 있는 곳을 처음으로 결정하는 것이기도 해서, 어떠한 첫 선택이 더 나은 나를 만들지 결정하는 데까지 어려움이 많았는데요. 돈, 명예, 꿈 등 여러 가치를 놓고 긴 시간 동안 수차례 고민해 보았을 때, 귀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제 가치관과 가장 부합하는 것 같고, 이에 조직 속에서 저라는 사람이 구김 없이 그대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아 최종적으로 입사 결정하려 합니다.
이직한 회사는 나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전 회사에서 귀에 피가 나도록 피드백으로 들었는데도 행하기 힘들었던 그놈의 "주도성"이 이 회사에서는 잘만 되었고, 나의 결에 꼭 맞는 아기자기한 동료들, '나'라는 사람 자체를 관찰해 주는 좋은 팀 리드도 만나게 됐다. 여태껏 "성장 가능성"과 "소속감"이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회사를 오고 나서 "안정감"과 "좋은 동료"가 내게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나의 첫 이직, 기존의 방식에 수긍하고 맞춰 가는 것과 내가 도입하고 싶은 것을 융화하는 과정의 첫 경험. 이 과정이 통째로 나를 회복하게 했다. 어느 집단에서는 내가 쓸모없게만 느껴졌는데, 내 쓸모를 알아봐 줄 곳은 어디에나 있었다.
큰 틀이 회복된 뒤로는 좋아하던 일들을 놓치지 않고 했다. 한 번의 해외여행과 열한 번의 국내 여행을 갔다. 틈만 나면 쏘다녔다. 두 번의 페스티벌, 세 번의 내한 공연을 즐겼고 보고 싶은 뮤지컬이 생기면 그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들을 처단하고자 수영도 시작했다. 그렇게 물을 무서워하던 나였는데 수영장 문을 열자마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물에도 잘만 떴다. 내가 겁내던 것들은 사실 이미 겁내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는 ‘겁내던 나’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연초부터 너덜너덜해졌었으니 올해는 정말 나에게만 집중하며 사랑과는 담쌓고 살 줄 알았는데, 하릴없이 사랑 투성이인 나는 그럴 사람은 또 못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올해 나는 모든 사랑을 전력 질주 하듯 했다. 사소한 공통점이나 그동안의 정 같은 것에 붙들려, 혹은 뭐라도 하나 붙잡고 싶은 마음에 붙들려 나의 깊고 깊은 곳까지, 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내어 주었다. 마음에 없는 걱정과 배려로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기도 했다. 나보다 네 마음이 더 걱정돼. 네 마음이 작아졌다면 내가 더 큰 마음을 줄게. 간절한 척 뱉은 말들. 사실 나는 내 관계망에 공석을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했으면서. 더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장 컸고, 언제든 도처에 있어 줄 사람의 존재를 보고 안심하며 내 마음에 금 가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으면서. 일단 관계를 살려 놓으려고 아무렇게나 뱉어 놓은 말이 내 마음이었던 것으로, 그렇게 믿고 몇 달을 연인이란 타이틀로 함께 보내고 결국엔 상처받는 식이었다. 무수한 거짓된 노력을 비웃듯 나는 쉽게 버려졌다. 내가 어떻게든 부지하고 싶던 인연의 끈 같은 것은 그렇게 꼭 쥐고 있어 봤자 내 손바닥에만 손톱자국을 만들 것이었는데. 그걸 그렇게도 몰랐다. 모르고 싶어 했다.
내가 노력한 관계들은 모두 나를 울려 버리니 노력하는 관계 자체를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했다. 나 이제 노력하는 관계는 그만하려고, 방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그랬다. 채윤아, 네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늘 노력이라는 단어가 붙는 걸 알아? 너에게 사랑은 곧 노력을 뜻하는 걸지도 몰라. 노력하는 관계를 그만두지 말고, 네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나. 네가 노력하고 싶은 사람, 힘 들이지 않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그렇다. 나는 또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 없는 사람은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이 도망치는 사람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멋있는 것이고. 나는 이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며, 관계 유지를 위한 거짓된 노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잃지 않음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맞추며 살았고, 이 맞추면서 사는 과정 자체가 나의 삶이기도 하겠지만, 오로지 관계의 끈을 붙잡겠다는 것만으로 나를 부정하면서까지 변화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른이 되어 버렸고, 어른의 세상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고, 올해 이 모든 과정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너무 고역이었지만, 나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이다. 겪어 보기 전까지는 대비하지 못하는, 대비하지 않는 나 같은 부류는 더욱이 그냥 부딪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연말은 좀 평안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보증금을 안 돌려줄 것처럼 구는 집주인을 만났지만 보증금은 어떻게든 받아내면 되는 것이고, 갑자기 회사 경영이 또 기울었다지만 회사를 잃는다면 다시 회사를 구하면 되는 것이다. 한번 해 봤으니까 다음은 좀 더 쉽잖아. 너무 힘든 날에 나에게 필요한 말은 "지금 보러 갈까?"라는 걸 알았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지금 보러 갈까?" 할 수 있는 귀한 사람들이 내 곁에 많음을 알았다. 이것만으로도 살 이유가 충분하다.
2023년 내내 나는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마다 사람들은 나에게 “채윤이는 단단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했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이 나를 "위해서" 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최근에 또 수집한 나에 관한 문장은, 나는 너무 빨리 큰 사람, 잘 타는 사람. 사람을 잃는다는 건 엄청 큰 얼음을 천천히 녹이는 과정. 나는 나를 어떻게 키우고 태우고 얼음을 어떻게 녹이며 살까. 새해가 기대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올해는 기대한 것 하나 없을 때 찾아오는 행운 같은 것을 감히 바라 본다. 23년도의 노력으로 미루어 보아, 이쯤은 바라도 될 것 같다.
*이용한,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