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윤 Apr 18. 2021

왜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번아웃 이겨 내기

  번아웃. 열심히 살 의지가 없어졌을 때, 삶의 기력을 소진한 것 같을 때, 그걸 한 단어로 말하고 싶을 때 이 단어로 내 상태를 설명했다. 반쯤 인정하고 반쯤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 번아웃이 온 것 같다.


  학부 때에는 좋은 성적이라는 단기적 목표만을 바라며 아등바등 살았다. 운 좋게 소프트웨어 전공이 적성에 잘 맞았던 나는 학부 내내 좋은 성적을 거뒀고,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학부 생활과 외부 동아리를 병행하며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배웠다. 동아리에는 실무에 있는 직장인이 반 이상이었고, 내가 동아리에서 배운 것들은 학부에서 배운 것과 사뭇 달랐다. 내가 얼마나 노력한다 한들 갈 길은 늘 멀었다. 그럼에도 계속했다. 동아리 사람들은 열정이 넘쳤고, 모든 일에 열심이었고, 나는 지속적인 자극을 받았다. 나도 당연히 그런 노력을 해야만 했다. 앞만 보고 달렸다. 어느 날에는 우리 학교 연계형 인턴 공고로 동아리 단장님의 회사가 떴고, 나는 이 회사에 무조건 붙어야만 했다. 좋은 기회로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는 순간은 지금 뿐일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멋진 개발 문화를 가진 곳이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고, 그 회사의 일원이 되고 싶었으니 그 순간을 잡아야만 했다. 포트폴리오 색깔까지 회사 시그니처 색깔로 맞추는 등 유치한 노력들을 했다. 간절함이 닿았을까. 면접의 기회를 잡았다. 면접을 보고 나와서는 이런 일기를 적었다.


부족한 내 역량이 부끄러운 날이었다. 차근차근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결과가 어떻게 됨을 떠나서 발전이 더딘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열정을 내세워서 호소한 것 이상이 아니었던 느낌, 생떼를 쓰고 온 기분. 집 오자마자 개발은 하고 있지만 머리가 아프다. 오늘이야말로 영화나 한 편 보고 자야 하는 날인가.


  영화도 안 보고 개발만 계속했을 것이다. 부단히도 노력했다. 결과는 합격이었지만, 합격하는 순간에도 나는 부족한데 합격했다 생각했다. 인턴 생활 내내 열심히 살았다. 난 회사에게 부족한 사람이니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발전에 쏟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을 늘려야 했다. 수면 시간이 내가 열심히 살았음을 수치적으로 증명했다. 나는 하루에 네 시간씩만 자면서 수면 시간 이외의 시간을 모두 개발에 쏟았고, 매일 내가 한 공부와 노력을 정리했고, 해 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정말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오는 피드백은 늘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인턴 생활 피드백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저는 이만큼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없었는데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끅끅대며.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번듯한 직장인으로서 자립하고 싶었다. 인턴 생활을 연장하며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 하여 내 인턴 생활은 반년으로 늘어났고, 2개월의 수습 과정을 더 거친 뒤 나는 비로소 정직원이 되었다.


  정직원이 된 뒤에도 내가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였다. 개발자라고 개발만 잘하면 다 되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개발도 못하니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맡아야 할 프로젝트의 규모는 점점 커졌으며, 협업하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고, 한 달에 두세 번은 내가 면접관이 되어야 했고, 내 실수를 감당할 줄 알아야 했고, 발전시켜야 할 역량 기준은 점점 높아만 졌다. 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사 임팩트를 만들어 내야 했다. 어느 날에는 할 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또 노력했다. 노력 중독자처럼 다음 스텝을 생각했다. 더 나은 내가 될 다음 스텝.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다.


  개발자로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었다. 스위치를 내려 갑자기 멈추어 버린 기계처럼, 사고가 딱딱하게 굳었다. 왜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 를 자신에게 물은 순간 명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내적 동기는 오로지 한 치 앞의 일에만 향해 있었다.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를 보았을 때 그렇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 정직원이 되기 위해, 새로이 할당되는 내 몫을 배우고 하기 위해. 한 치 앞의 일이 사라지는 순간, 내 내적 동기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한 치 앞의 일들은 무슨 이유로 설정했을까. 어떤 동기였을까.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한 걸까.

  나 자신에게 답이 나오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살고 있으니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야지 싶었다.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있을까. 사람들은 나처럼 원대한 이유 없이 열심히 살까. 아님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내게는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고, 모인 답변들은 예상보다 훨씬 다채로웠으며, 나는 질문을 통해 필요한 해답을 찾았다.



  시간에 저항하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고귀한 행위 중 하나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살 이유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살았다 기준 삼았던 것들을 돌이켜보면 시간을 아끼며 살았을 때, 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살았을 때였다. 열심히 사는 데에는 꼭 원대한 목표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껏 내가 해왔던 것처럼, 그저 고귀한 행위일 뿐인 것을 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일 필요도 없다. 어쩌면 번아웃이라는 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계속해서 저울질하는 것이라서, 과거보다 현재가 못하다는 것으로 나를 채찍질하다 나가떨어져 버리는 것 같다. 과거를 칭찬해 줄 수도 있을 텐데.


  정성 어린 마음들에 갈피를 잡아가고 있다. 추천해 주신 영상을 봤고, 책을 구매하여 아침부터 읽고 있다. 언제일지 모를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회사 메신저에 남겼던 질문을 열심히 살았던 증거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했던 마지막 메시지로 글을 마무리한다. 마무리되는 글과 함께 번아웃을 겪는 중인 모든 사람들의 고민도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당장은 못 되더라도, 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 미래에 대한 힘을 얻고 이겨 냈으면. 나는 아직 멀었지만 잘 이겨 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