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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Apr 11. 2021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에 관한 단상

글을 쓰지 않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붙잡고 살 만한 기억들을 놓치지 않고 적어 놓기 위해 글을 쓴다. 이 글 또한 내 기억이 바래기 전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놓기 위한 글이다.


1. 나는 왜 글을 쓰지 않았는가

초등학생 때부터 반강제적으로 글을 써 왔다. 교내 백일장에서 종종 상을 탔다. 꼭 거짓된 마음을 있는 것처럼 꾸몄을 때 상장이 나왔다. 이상한 반감이 들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글보다는 억지로 쓰는 글들이 많았다. 글쓰기는 내게 즐거움을 주는 과정보다는 요만큼의 마음을 원고지 분량에 맞추어 왕창 키우는 과정이었다. 창의력 착취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글로 설명하는 것이 오백 배 편했다. 알 수 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다. 회사 기술 블로그에도 두세 편의 글을 기고했고, 좋은 글이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하지만 그 글들도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부여된 글들이었다. 글쓰기는 곧 내가 할 줄 아는 것들 중 썩 괜찮게 하는 것이니 해 본 것에 가까웠다.


2.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졌는가

2021년 1월, 속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같은 친구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만난 지 이틀 만에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 세 개를 던져 달라 했다. 나는 읽고 있던 시에서 대충 세 단어를 뽑아 던져 줬는데, 그걸로 더 멋진 시 한 편을 뚝딱 만들어 내어 줬다. 머리 잔뜩 굴린 티가 났지만 분명한 힘이 있는 글이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겨울부터 회사 글쓰기 모임에 들어 이 주에 한 편씩 글을 쓰고 공유하던 나였다. 주로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을 모아 설명하는 등의 설명 글을 썼다. 그러다 그녀의 시를 다섯 편쯤 모았을 때, 나는 내 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꺼내 썼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쓰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렇게 쓰게 된 글이 만족하는 삶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현재에만 만족하며 사는 건지 답이 나오지 않아 마음을 정리하자는 일념으로 쓰게 된 글. 회사의 의례적인 티타임에서 인생의 목표를 질문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고찰을 줄줄 적었다. 회사 생활의 애환을 담은 글이라 회사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읽어 봤자 몇 명이나 읽겠냐는 마음으로 일단 쓴 글을 공유했고, 다음 티타임에서 첫 독자님을 만나게 됐다. 내 글이 너무 좋았다 그랬다. 나는 고민이 너무 많이 담긴 글이었기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웠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썼다 그랬는데, 그는 한 줄 한 줄 어느 부분이 어떻게 좋은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쓴 것일지 헤아려 줬으며,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부드럽게 지지해 줬다. 문장의 호흡까지도 마음에 든다 그랬다. 현재와 미래 중 어느 하나만 행복해야 할 필요 없다 그랬다. 모든 고민과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나는 내 속을 더 드러내고 싶어졌다.


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쓰기 시작하니 그동안 내가 놓친 것이 너무 많았음을 알았다. 내게 시를 선물한 그녀는 주로 내가 던져 주는 단어, 음악, 사진, 들풀, 자연을 보고 글을 썼다. 괜스레 나도 작은 것을 세밀히 관찰하게 됐다. 관찰은 생각이 되었고, 생각은 상상을 키웠다. 놓치고 산 자연의 경이로움이 너무나 많았다. 자세히 보지 않고 넘겨 버린 내 속의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당연하다 넘긴 것들이 아까웠다. 분명히 빛나고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을 텐데. 그래서 이제 나는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하며 쓰기로 했다. 지나간 것들이 아쉽다면 지금부터는 두 배로 더 가슴깊이 느끼자는 마음으로.


4.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작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으니 지금이라도 잘 관찰하고 쓰자는 수필들, 내 마음을 잘 정리할 수 있는 해소제에 가까운 글들이다. 이는 곧 내 글의 독자가 나라는 것이 되기도 하는데, 글을 적으면 적을수록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티타임을 통해 독자의 공감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느꼈다. 나 또한 타인의 경험이 적힌 글에서 나의 경험을 보면 위로를 받는다. 이왕 쓰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도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서로를 위해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5.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결론을 제목에 붙였다. 마음이 좋아지는 글을 쓰고 싶다. 나에게도 좋은 글, 타인에게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 글이 과하거나, 느끼하거나, 유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인 '과장'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을 피하고 싶다. 요즈음 나는 오후에 카페에서 글을 쓰고 깜깜해질 때 집에 들어가는데, 그 밤에는 유독 내 글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집 가는 길 내내 읽어 보다가도 다음 날만 되면 모든 문장에 힘이 빡빡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벅벅 지우곤 한다.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 이야기를 쓴다고 나에게 취해 있고 싶지 않다. 내 글에도 취해 있고 싶지 않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종종(사실은 자주) 표현력의 한계를 느낀다. 더 많은 아웃풋을 내기 위해 인풋을 고갈되게 두지 않아야 함을 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쓰자. 쓰고자 하는 이유가 확실한 만큼 더 좋은 것들을 기록하자. 이 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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