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윤 May 08. 2021

어버이날

해피 어버이날.


엄마한테 왜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기분일까 했는데 작년 생일에 카드 한 장 못 썼더라고, 내가. 아마 추석이랑 겹쳤었지. 선물은 늦지 않게 구매하겠다고 연휴 전에 부지런히 움직였으면서 왜 편지는 못 썼을까. 분명히 늦게라도 전할 작정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별생각 없이 이번엔 편지는 없다고 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종종 생각났어. 엄마가 그랬잖아. 편지가 중요한 건데, 그랬잖아. 엄마는 그때 속상했을까?


나는 엄마한테 그런 걸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친구들한테는 자주 묻는 말이거든. 나한테 서운했어? 그래서 나 때문에 속상했어? 같은 것들. 나는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잘 속상해하지도 않고, 삐치지도 않아. 몰랐겠지만 엄마 딸이 그렇게 컸어요.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거는 기대가 많은가 봐. 종종 속상함을 표현하더라. 직접 말하는 경우도 있고, 행동에서 티 나는 경우도 있어. 이럴 때마다 나는 물어봐. 나 때문에 속상했지, 하고. 엄마도 나 때문에 종종 속상했지.


나는 왜 엄마를 생각하면 속상하게 만들었던 것들만 떠오를까. 편지를 쓰려고 할 때마다 왜 죄를 고백하게 될까. 왜 편지 마지막 줄에는 앞으로 더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 쓰고서 내 삶만 챙기기 급급할까. 엄마,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은 어떤 딸이야? 내 자리에서 내가 할 몫만 열심히 챙기는 딸이라면, 걱정시키지 않고 회사 생활 열심히 하는 딸이라면 자랑스러운 딸이야? 나는 요즈음 내가 궁금해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엄마를 더 많이 궁금해했어야 했는데.


엄마는 뭘 좋아해? 나는 그게 참 궁금하다? 내 기억 속 엄마가 좋아했던 것들은 너무 먼 과거에 멈춰 있어서. 죄스럽게도 그래서. 엄마는 가오리 핏의 옷을 좋아했고,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로 쇼핑 가기를 좋아했고, 김건모의 바보라는 곡을 좋아했고, 지금은 끊은 커피를 좋아했고. 화로닭발에 계란찜 먹기를 좋아했고. 이제 거기 없어졌잖아, 엄마. 나는 거기 없어졌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우리 오래 살았던 단독주택 부서질 때만큼 슬펐다? 또 엄마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종종 백일장을 나갔고, 글을 쓰고 나오면 상을 탈지, 못 탈지 직감으로 알았고. 엄마, 나도 글을 쓰기 시작했어. 엄마는 글을 쓰다 왜 멈췄어?


나는 엄마 글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그래.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어머님은 어떤 분이셔, 하고 물으면 우리 엄마는 글쓰기를 좋아했었어, 그래서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탔었어, 그렇게 말해. 그리고 엄마는 참 유쾌한 사람이라고,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다 채윤이네 엄마 너무 재미있어서 좋다 그랬다고 그래. 그러면 다들 그런다? 너 엄마 닮았구나. 엄마 닮아서 그렇게 밝구나. 엄마 닮아서 글 쓰는 것 좋아하는구나. 나는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좋아. 자랑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겠지.


엄마도 그럴 때가 있을까? 내가 엄마 딸이라서 좋을 때. 그렇다면 그건 언제일까. 큰 사고 없이 대학 잘 가고, 회사 잘 다녀서 걱정 안 만드는 딸이라 좋을까? 나는 그것보다 엄마가 내 속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꾸준하게 다양한 관심사를 만드는 딸이라서 좋다든가, 다정한 마음을 가진 딸이라서 좋다든가. 엄마가 나를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늘 궁금한 존재가 되고 싶어. 엄마는 나한테 어떤 게 제일 궁금해?


엄마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한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엄마, 나는 요즈음 책 읽기가 재미있어. 다섯 권 이상의 책을 한꺼번에 읽고 있어. 산책 가는 게 재미있어. 부산 흰여울마을의 파도는 꼭 울음을 닮았더라. 돌부리에 걸려서 터지는 파도가 펑펑 우는 사람을 닮았더라. 또 요즈음은 클래식을 가장 자주 들어. 손열음의 라흐마니노프 연주가 좋아.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던 게 너무너무 좋아. 그리고 혼자 가 본 적 없던 곳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안 먹어 본 음식을 먹고 안 마셔 본 칵테일을 마셔 보는 게 재미있어. 합정의 어떤 LP바에 혼자 갔을 때는 장필순의 어느새라는 곡을 알게 됐어. 옛날 노래던데, 엄마도 알아? 그 곡을 들으면서 엄마한테 편지하고 있는 지금이 좋다.


5월은 우리 가족에게 기념할 날이 많은 달이지. 곧 내 생일이잖아. 생일 선물로 엄마 답장을 받고 싶어. 엄마 글씨가 보고 싶다. 그래서 준비한 펜과 편지지야. 예쁘지? 엄마 이름도 각인했어. 오래오래 잘 쓰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엄마를 더 궁금해하는 딸이 될게. 그런 딸이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음 해. 사랑해. 그럼 답장으로 또 만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