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윤 Jun 07. 2021

재미없는 아침

아빠랑 같이 있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주로 아침이었다. 나는 열한 시 안으로만 출근하면 되니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고, 아빠는 내 기척을 느끼면 조용히 씻고 나와 소파에 앉아서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물었다. 매번 묻는 물음에 매번 똑같은 대답. 응, 나 준비되는 대로. 아빠가 데려다 줄게. 으응. 아빠는 회사를 퇴직하고 나를 종종 회사까지 태워 줬다.


"응, 나는 지금 여의도 가는 길이지. 큰딸 회사 출근시켜 주느라고. 데려다 주고 카페로 갈게."


동네 골목을 지날 때쯤이면 매번 같은 친구에게 매번 같은 통화. 통화가 끝난 뒤 차를 채우는 소리는 엔진 소리, 라디오 소리, 어쩔 때는 아빠가 받아 온 트로트 음악 소리. 가뭄에 콩 나듯 오고 가는 대화. 채윤아, 너희 회사 건물이 왼쪽에 있는 거니, 오른쪽에 있는 거니? 으음, 그러게. 멀리서 보니까 모르겠다. 교회에 누구누구라고 아니? 그을쎄, 몰라. 나 교회 안 나간 지 오래됐잖아. 으응, 걔가 결혼했대. 아아, 그래? 또 침묵. 아빠는 내가 모를 만한 것들만 물었고, 우리는 침묵이 익숙했고, 매일같이 재미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차 문을 닫으면서 나는 고마워, 혹은 땡큐, 아빠는 으응, 수고해.


그런데 아빠가 없다면.


오늘 아빠의 암이 전이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가 없다면 재미없는 물음을 던져 줄 사람이 없다. 아빠가 없다면 당연한 말을 괜히 던질 사람이 없다. 출근하고 아빠가 데려다 줘서 편하게 왔다고 자랑할 수 없다. 종종 강아지를 발 밑에 두고 잠든 아빠를 보며 웃고 사진 찍을 수 없다. 땅콩이는 꼭 아빠랑만 자려 한다며 했던 말 열 번 스무 번 반복하는 것을 들을 수 없다. 너희 아빠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지 않냐고 웃는 엄마랑 같이 웃을 수 없다. 이야기하다 꼭 딴길로 새는 아빠에게 핀잔 줄 수 없다.


언제까지 이 재미없는 아침을 같이할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무섭고 눈물이 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어버이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