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7월의 앨리스

by 채니

"앨리스, 나는 요즘 네 정신이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다."


"5분만요. 오늘까지 보내주기로 했거든요."


"무슨 소리야. 마감일은 30일이었다면서."


앨리스는 메기에게 몸을 돌리더니 씨익 웃으며 승리의 브이(V)를 들어보였다.


"9시에 한 번, 점심시간 전에 한 번, 5시 50분에 한 번씩 전화해서 졸랐더니 오늘까지 보내래요. 아, 이메일도 5통 보냈어요. 다 다르게."


메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며칠 간 앨리스가 초집중하고 있었던 노트북 화면을 흘깃 쳐다보았다. 약 2주 전에 앨리스가 본인이 주민센터에서 아주 멋지고 '운명적인'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며 연신 자랑을 해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앨리스가 '운명'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딸의 거창한 계획에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상황을 보아하니 앨리스가 공고문 작업에 들어간 건 마감날 전날이나 당일이었을 것이다. 결과물이 일찍 나왔더라면 직접 프린트까지 해서 메기 앞에 자랑스럽게 들이밀었을 것이 분명했으니.


메기도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딸이 디자인에는 영 감각이 없다는 사실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연두색 배경에 시뻘건 궁서체라니 섬뜩했다. 심지어 상단에는 '생각이 쑥쑥 티타임'이라는 72 포인트 크기 정도 되어보이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에도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공고문인데, 다른 학부모들이 과연 흥미를 가질지 의문이었다.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딸이 실망할까 봐 걱정이 되었을 뿐이다. 디자인을 개선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깨낼까도 했지만, 앨리스는 타격없이 어깨를 으쓱하고 ‘어쩌겠어요’라고 할 아이이기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지난 사흘 간 앨리스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듯 책상 위는 <시작! 포토샵>, <하루 만에 일러스트레이터> 등 온갖 디자인 서적들로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메기의 눈에는 모든 것이 벼락치기의 흔적으로만 보였고, 그 벼락치기조차 결과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앨리스의 진심만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가슴을 잠깐 찡하게 했다.


"지금 네 책상 위를 찍어서 공고문 하단에 넣는 건 어떠니? 아래에는 ‘노력은 했습니다'라고 써놓자."


"아, 엄마!"


역시나 전혀 타격이 없는 앨리스였다. 앨리스는 메기와 킥킥대고는 곧바로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7월 3일 오후 5시 57분. 주민센터에서 공지한 마감날짜로부터 무려 3일이나 지난 시점이었지만 앨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전송' 버튼을 눌렀다.


"너도 참 한결 같구나."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메기는 고개를 저으며 '출입 가능' 팻말이 달린 방문을 슬며시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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