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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브엔소닉 Jul 07. 2020

참새를 태운 잠수함 #1

 시대를 주름잡는 기획자 인터뷰 #7 구자형 선생님 - 1부-

2018년에 나는 <스타 음악방송작가 구자형의 음악이 있는 북콘서트: 조용필, BTS 그리고 비틀스>라는 토크 콘서트를 공동으로 기획한 경험이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많은 통찰력을 준 공연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새로운 인연들로 마음을 복잡하게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계기가 되기에 피할 수가 없다. 구자형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구자형 선생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 방송 프로그램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스타작가이다. 최근에는 매년 아이돌 BTS의 대중음악서를 쓰고, 기타를 메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힙'한 분이다. 돈이 아닌 순수, 상품이 아닌 예술, 그런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몇 안 되는 소중한 분이다.


구자형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이뤄준

2020년 6월 27일 오후,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참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만나서 진행하였다.

인터뷰 베테랑을 인터뷰하다니.

무엇을 물어야 할까? 첫마디는 무엇으로 시작해야 할까.


두 시간의 프리스타일 인터뷰는 깊은 영감과 통찰의 시간이었다; 스승 없는 사회, 카톡으로는 오고 갈 수 없는 '진담'의 시간. 한 가지 경고. 길다. 시간을 갖고 음미해주길 기대한다.


https://youtu.be/TCpcv4QXUHI

 

[Q1. 이 인터뷰에 관하여 - 기획이란 무엇인가]


나: 이 프로젝트는 인터뷰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음악산업 관계자, 공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기획되었어요.


선생님: 프로젝트는 내가 만드는 거지, 시대랑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아. 돈을 떠나면 뭐든지 할 수 있어.


https://youtu.be/g1h9Aue5jGI

구자형 선생님 신곡 <얘야, 별을 불러 떠나가자>



나: 기획이 나만 돈을 떠난다고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선생님: 꼭 현실화되지 않아도 기획이지. 오히려 현실화되지 않은 기획이 더 좋은 기획일 수 있거든. 정말 위대한 것은 현실화되지 않아.


나: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현실화만이 기획의 목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 내 꿈에 대한 노력이지. 1차 모독은 나 자신이 거든. 메모 한 줄을 했다고 해봐, 그 자체가 씨앗이잖아. 꼭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되면 좋지. 하지만 이 자체로 좋아. 이 씨앗이 없다면, 빌 게이츠가 전재산을 기획자에게 준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해도 소용이 없는 게 돼.


반대로 돈을 떠나야 사실 그때부터 기획이 되는 거지. 어느 날 흘려보낸 아이디어를 누군가 듣고 훔쳐가기도 하고, 베끼기도 하고, 드물지만 같이 하자고 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위대한 거지. 진짜는 사라지지 않아. 내 잣대는 생명이 있는 거야. 생명이 없는 건 가짜야.


아무리 화려해도 진짜가 아닌 건, 다 가건물 같은 거야. 생명이 없거든.


나: 생명이라는 것,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보죠? 선생님은 알아보시나요?


선생님: 이제는 알아보지. "속지 마라 악한 사람이,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이런 성경 구절이 있어. 많이 당해보면, 뒤통수를 너무 맞아서 뒤통수가 닳아져 없어지면, 딱 보면 알지.


나: 쉬운 방법은 없어요? 너무 슬프네요.


https://youtu.be/jyoc8kbkSLI

구자형 선생님 신곡 <품바>



선생님: 슬픔은 주유소야. 그게 있어야 예술이라는 차가 가. 정찬주 작가, A급 작가지, 이 분에게 내 노래 <품바>를 들려드리니까, 슬프다고 하더라고. 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대부분 슬프데. 나는 그 말이 좋더라고. 사람이 하나는 가져야 하잖아. 난 슬픔을 가지고 있구나. 슬픔은 아무나 가질 수 없어. 그게 나한테 주어진 거야.


슬픔은 소금기가 있어서, 썩지 않는 소금에 속하는 거라고 생각해.

슬픈 조건이 많을수록 자유로운 거거든.



[Q2. 거리두기와 슬럼프 - 예술의 자유로움에 대해서]


나: 왜 슬픈 게 자유로운 거예요?


선생님: 일단, 바쁘지 않으니까 슬픈 거거든. 자유로운 거지.


나: 뭐로부터 자유로운 거예요?


선생님: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가 나한테 거리를 이미 많이 두었으니, 나는 좋은 거지.


나: 슬픈 나에겐 땡큐 네요. ㅎ


선생님: 슬럼프가 축복이야. 일이 없을 때, 그때 굉장히 고통스럽잖아. 근데 돌이켜보니까 그때가 가장 좋은 시간이야.


나: 왜요? 일이 없는데, 정당한 휴일이 아니라, 일이 없어서 강제로 쉬어야 한다면 고통스러워요.


선생님: 이 시간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매듭을 짓는 시기거든.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슬럼프라고 부르지. 근데, 나는 기독교인이니, '하나님이 나에게 너 나와 같이 있자' 하고 초대받는 거야. 세상이랑 같이 있지 말고.


나: 슬럼프가 침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잖아요. 마음이 침체되면, 반성하는 것, 새로운 것을 짜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데, 그런 것들을 하기가 어려울 수 있잖아요.


선생님: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역사에 속하는 거잖아. 내가 MBC 작가라는 것은, MBC의 역사에 속하는 거지, 내 역사를 쓸 수 없잖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이 프로그램의 역사에 속하는 거지. 그 역사에 갇혀 있어. 이 역사를 벗어나서 자기 역사를 써야 해. 여기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들이 노자, 장자 이런 사람들이지. 우린 그 역사를 공부하고.



[Q3. 책 이야기 - 글 쓰는 것]


나: 지난번에 주신 <BTS 7>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덧 - 구자형 선생님은 <BTS 어서 와 방탄은 처음이지>, <21세기 비틀스: BTS>에 이어 올해 세 번째 BTS 시리즈를 출간하셨다. 이외에도 싸이, 김광석 등 한국의 대중문화를 통찰한 책들을 다수 출판하셨다.

 (책 정보: https://search.kyobobook.co.kr/web/search?vPstrKeyWord=%25EA%25B5%25AC%25EC%259E%2590%25ED%2598%2595&orderClick=LAG)

<BTS 7> (작가: 구자형, 빛기둥 출판 2020)


선생님: 매년 냈지. 이번이 세 번째고. BTS가 매년 활동을 하니까.


나: 왜 하필 BTS에요?


선생님: <DNA>라는 노래를 듣는데, 2017년 9월에 이 노래가 나왔어. 딱 듣는데, 비틀스가 팝의 최고잖아. 비틀스를 뛰어넘는다고 하기 보다는 비틀스의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더라고. 난 너무 신기했어. 죽을 때까지 그런 건 안 나올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나 또한 은근히 기대는 했지.


나: 그게 우리나라에서 나올 줄 아셨어요? 왜냐면, 우리나라 음악시장은 굉장히 협소하고, 수용자 쪽에 가깝지 생산자 쪽에 가깝지 못해 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으로 여겼어요.  


선생님: 내가 하려고 했지.


나: 아, 그럼 뺏겼네요?


선생님: 뺏겼는데, 편안해. 잘 빼앗겼어. 고마워.

https://youtu.be/MBdVXkSdhwU

BTS <DNA>

스무 살 때 꿈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밥 딜런하고 듀엣 하는 것, 또 하나는 비틀스가 내 앨범을 사는 것. 왜 우리는 듣기만 하나. 불쌍하더라고. 부끄럽고. 분노가 있었어. 한국의 최고 스타도 그것을 못 벗어났지. 그런데 BTS 가 벗어났어. RM 이 미국에서 인터뷰를 할 때, 어떤 기자가 물었어. '21세기의 비틀스라고 칭하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그러니까 RM 이 말했어.


고맙고, 영광스럽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나: 굉장하네요.


선생님: '21세기의 비틀스'라는 말도 내가 제일 먼저 했어, 2018년에. 어느 기자가 '과찬인데요?'라고 했어, 그냥 아이돌로 본거지. 걔들은 그냥 아이돌이 아니거든. BBC가 나보다 2년 늦게 그들을 비틀스와 비교했어.


나: 이미 선생님의 명명을 따라가네요.


선생님: 그들도 딱 들으면 아는 거지. 누가 더 센지. 딱 들어보면 패배한 쪽이 더 잘 알아. 노력과 실력면에서.


나: 그러면 RM의 대답은,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는 건 답습하지 않고, 비교되길 거부하는 거네요.

 

선생님: 똑똑한 거지. 내 예상이 맞은 거지. 다음 역사를 쓰겠구나.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잖아, 에리히 프롬이 그런 말을 했었지. 그런데 이 걸 세계적인 밴드가 말을 하니까 전 세계가 한 번에 확 먹힌 거잖아. 음악의 순수를 가다 보면 저절로 그런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어. 음악은 그런 거야. 평화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


제이홉 이 아침에 일어나서 첫마디가 'Oh, Peace'. 공연할 때 나직이 중간중간에 'Peace'라고 말해. 이건 자기가 만난 음악적 진실이거든. 평화라는 말이 원래 '악기 소리가 모양이 잘 퍼져 나간다'는 것을 보고 '평화'라고 해. '화'라는 악기가 있었어. 이건 완전히 조화잖아. 도도 미도 필요해. 음계가 전부 다 필요해. 빠지면 음악이 안돼. 인도는 음악에 29 음계가 있어. 모든 음이 다 정음이야. 단지 게는 그 음일뿐이야.


나: 음악에도 불협이 있잖아요?


선생님: 프리재즈라는 것도 있지. 그건 실패했어.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하는데, 정말 마음으로 도통한 사람들이 해야 해. 안그러면 소리가 깨져 재수가 없지, 이미 금 간 그릇인데. 그래서 실패한 것 같아.


사실 이런 대화도 프리 재즈긴 하지. 음악이고. 그게 무슨 별거야?


BTS 이야기 2부 계속.



<시대를 주름잡는 기획자> 시리즈 소개

음악을 만드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인터뷰 시리즈는 서울문화재단의 <문화기획활동 긴급지원 190시간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작성: 콜라브엔소닉 (thauma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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