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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린 Jul 10. 2019

나는 팔자 좋은 유럽의 취준생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의 무게

나는 팔자 좋은 유럽의 취준생이다.


말이 좋아 취준생이지 백수다.


어느 정도 능력도 있으면서 운이 좋아 거주허가에 대한 걱정도 없어서 취업은 "안" 하고 한량처럼 시간이나 보내는 그런 잉여인간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골라서 하겠다며 욕심을 부리면서도 인생은 힘들다며 술만 마시면 눈물바람인, 그런 한심한 인간이다.


남들은 말한다. 그렇게 능력도 많고 문제 될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취업이 안 되는 건, 못 하는 게 아니라, 눈이 너무 높아서,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취업을 준비하는 다른 한국 사람들은 취업비자가 주어진 1년의 시간 동안 기를 쓰고 노력을 하다가 결국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비자 걱정은 없고, 그러다 보니 여유가 있어서 늦장 부리는 거란다. 사치스럽단다.


나는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버티는 것이라고. 성격상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금방 질리고 싫증 내는 탓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못 해서 그런다고. 내가 여유 부리는 거 알고 있고, 어쩌면 욕심내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내 여건이 따라주는 그 한계 안에서, 최대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서, 내 나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조차 없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래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이라도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며 산다고. 그래도, 내가 하는 노력들을 깔보지 말아 달라고, 왜냐면 나에겐 그건 정말 필사적인 노력이니까.


내 마음대로 사는 것.


한국의 끔찍한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고 3 봄 무렵 유럽에 정착한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생 무렵에는, 아니, 내가 한국을 떠난 그 고 2, 고 3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이란 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이 너무 많았던 나는, 점차 입시라는 현실 안에서 그 많았던 장래희망을 하나씩 접어 서랍에 넣어놓고, 누구나 그렇듯 모의고사 점수에 맞추어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학과를 골라보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지내오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펼쳐진 선택지는 단연코 혼란 그 자체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잃어버린 나는, 그것을 다시 찾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1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그나마 내가 하고 싶어 하던 공부 중의 하나를 골라 대학에 진학한 20대에, 나는 한 가지 인생 목표를 세웠다. 적어도 20대 때 만이라도, 내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살아보자. 공부가 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으면 여행을 가고, 밤새 파티를 하고 싶으면 밤새 파티를 하자. 대신, 그 선택에 있어서 돌아올 결과에 대해서는 남 탓도, 원망도, 후회도 없기로. 내 마음에 귀 기울여 보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보자. 20대로 정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20대가 아니면 그렇게 살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체력도 되고, 어찌 보면 철없는 그 행동들이 치기로 받아들여질 마지막 나이니까. 30대가 되면, 아무래도 책임져야 할 일이 더 많고, 그 무게가 무겁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20대 때 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보자. 후회 없이.


그렇게 20대를 보낸 나는, 어느덧 30대가 되어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조금 후회되는 것도 있고, 나는 왜 이렇게 멍청했을까 생각이 가끔 들기는 해도, 20대를 나름 잘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밀어닥친 현실의 무게, 20대 초반에 상상했던 그 30대의 책임감이란, 내 생각보다도 더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 아, 그래서 어른들이 20대의 나를 보며 그리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구나... 대학원을 끝내고 나니 이뤄놓은 것 없이 30대가 되어있었고, 밀린 학자금 대출과,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와, 각종 요금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기 민망한 못난 둘째 딸만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틈틈이 해놓은 여러 아르바이트가 계속 연결이 되어서 간간이 프리랜서로 일이 들어와, 1년 중의 반 정도는 내 힘으로 여차저차 살아가지만, 정말,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은 것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내가 열정적으로 변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걸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자존심, 혹은 고집이 남았다. 만약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냥 적당한 공부를 하고, 적당한 직업을 얻어,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적당한 삶을 살았겠지. 그런 삶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적당한 삶도 못 사는데, 오히려 그런 삶이 조금은 부러운 정도이다. 그냥, 나는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는 못 살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가지 않는다. 이곳에선 그나마 이런 삶을 힘겹게나마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내 욕심이 맞을 수도 있다. 근데 이걸 그만둬버리면, 그 아집을 버리고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안정적인 것을 취하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버리면, 난 아마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숨 쉬는 그 순간마다 후회를 하고,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살아갈 것 같다. 내 인생은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을 것 같다. 20대의 내가, 남들의 눈에 비치기엔 엉망인 삶을 살았어도 나는 그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것처럼, 내 인생이 남들의 눈에는 한량에 팔자 좋은 백수로 보이더라도, 나는 죽을 때 행복해하며 죽고 싶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는 돈을 벌며, 가끔 그런 내 선택으로 힘든 순간들이 다가올지라도 여차저차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삶.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유명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 바람이 누군가의 눈에 사치로 보이고 욕심으로 보이고 철없는 헛된 꿈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데 당신이 그것을 과한 망상이라 생각한다면, 나는 그대를 위로하고 싶다. 당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위로하고 싶다. 대신, 나라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축복해달라 하고 싶다. 기도해달라 하고 싶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매일 밤마다, 아침마다, 흔들리고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고,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두렵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타인의 시선이나 가족들의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건, 내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과연 내가 이렇게 버틴다 한들, 이 끝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룰 수 있을까. 정말 남들 말처럼 허황된 욕심을 갖는 건 아닐까. 매 순간 두렵고, 무섭고, 포기하고 싶다. 그럴 때면 뜨거운 샤워를 하거나, 진한 커피를 한잔 하거나, 문을 열고 나가 유럽의 거리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으며 헤맨다. 그러고는 한 가지 결론에 와 닿는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은 있고, 이 무게를 견디는 사람만이, 이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그러니까 까짓 거 그냥 되는대로 살아보자.


그래, 나는 팔자 좋은 유럽의 취준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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