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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린 May 31. 2021

[햇-마:당 presents] 불완전한 경험에 대하여

한없이 얕은 온라인 문화 콘텐츠의 경험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몇 주 전 예매해 놓았던 온라인 콘서트가 곧 시작한다는 알림이었다.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시원한 맥주와 스낵거리를 준비하고 소파에 앉아 링크를 열어 티비 화면에 채운다. 스트리밍이 곧 시작된다는 화면이 뜨고 몇 분 후, 기다렸던 공연이 시작된다.


    해외에 살면서 한국 아티스트를 좋아한다는 건 가끔 참 서러울 때가 있다. 앨범 한 장을 사기 위해 어마어마한 배송료를 감수해야 하고 공연을 보기 위해선 아티스트가 대성공하여 해외 투어를 돌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 면에서 보면 지난 한 해는 참으로 행복한 한 해였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능해지자 많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온라인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무료 공연도 많았고 유료 공연도 실제 오프라인 공연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원이 한정되어 있지 않아 피켓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무척 행복했었다. 이전에는 1년에 많아야 서너 번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지난 1년 새 온라인으로 즐긴 공연이 열 손가락을 넘는다. 양적으론 참 풍부해졌는데, 솔직히 말하면 만족도는 현저히 낮다. 심지어 내가 무얼 보았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이 낮은 만족도는 공연을 본다는 것이 단순히 그 공연이 제공하는 콘텐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공연장으로 향하는 그 길, 공연장 앞에 늘어선 줄에서 느꼈던 약간의 짜증과 기다림 끝에 공연장 문을 들어설 때의 그 기쁨. 공연 시작 전 아티스트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웅성거림, 모두가 텅 빈 무대를 한없이 응시하며 느꼈던 긴장감. 그리고 무대의 불이 꺼지고 아티스트가 등장하기 직전의 그 환호성. 아티스트와 한 공간에서 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희열과 여러 사람의 땀내가 뒤범벅된 묘하게 불쾌하지 않은 공기. 떼창, 연호, 그리고 무대 뒤로 사라진 아티스트를 재소환하는 끝없는 앙코르 요청. 공연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되어 그로부터 한동안 머릿속에서 끝없이 재생되는 짜릿했던 그 순간의 기억. 나에게 있어 공연을 보러 간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전체적인 경험에 의미가 있기에, 이 모든 것이 생략된 온라인 공연은 그저 껍데기뿐인, 영양가 없는 경험으로 다가오는 게 당연하다.  


    지난 한 해 많은 문화산업이 팬데믹의 해결책으로 택한 온라인으로의 전환은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많은 미술관이 오프라인 전시 대신 온라인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각종 강연과 공연 등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VR(Virtual reality)과 AR(Augmented reality)은 이러한 흐름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관련 기술은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온전히 디지털로 대체하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단순히 시각과 청각에만 의존하는 경험이란 다른 감각들의 결여로 인해 반쪽뿐인, 불완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에 간다고 해서 그 작품을 손으로 만지거나 맛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VR 고글을 쓰고 렘브란트의 야경을 감상한다고 해서 실제 왕립미술관에서 볼 때 느꼈던 희미한 유화의 냄새와 왠지 모르게 압도되는 그 느낌을 완전히 경험할 수 있을까?  


    흔히들 향기는 추억을 부른다고들 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시각과 청각을 통한 감각 정보는 바로 대뇌로 이동하는 반면 후각 정보는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로 바로 전달이 된다. 그렇기에 감정과 연계된 기억은 후각 정보와 함께 기록될 때 더 강렬하고 오래 보관되며 후에 다시 그 향을 맡았을 때 예전의 기억과 감정이 다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후각뿐만 아니라 촉각 정보 또한 기억의 지속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 이 경우에 속한다. 우리의 뇌는 글자를 보고 얻게 되는 시각 정보뿐 아니라 책의 무게감이나 크기, 종이를 넘길 때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 등의 정보와 결합 되었을 때 더 가치 있는 정보라 판단하여 더 오래 보관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다양한 감각 정보가 결합 된 기억일수록 그 가치를 높게 여긴다. 그렇기에 시각과 청각, 두 가지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온라인에서의 문화 콘텐츠의 경험은 다른 감각의 결여로 인해 실제 오프라인에서의 경험보다 감동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해당 스트리밍은 종료되었습니다.”라는 차가운 문구가 나를 반긴다. 잠시나마 영상에 빠져있던 나는 이곳이 실제 공연장이 아니라 방구석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여운을 즐기고 싶어 애써 다른 공연 실황을 찾아보지만, 세탁기가 다 돌았음을 알리는 전자음이 그나마 남아있던 여운마저 와장창 깨트린다. 화면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그 순간, 온라인 공연의 기억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애써 채우려 다른 온라인 콘텐츠를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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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튀는 전쟁터 같은 티켓팅이란 뜻으로 예매 시 많은 사람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치룬다는 덕질계 은어이다.


[April, 2021]


이 글은 햇-마:당 에디션 Life_ver.01.jpeg 에 소개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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