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마음에 틈을 만들고, 또 그 빈틈을 메운다
결혼 전, 밤바람이 시원하던 때였으니 아마 2020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나는 언니(남편의 누나, 그러니까 형님)들과 마음이 잘 맞는 편인데 그날도 나는 남편(당시는 남자 친구), 첫째 언니, 셋째 언니와 넷이서 천호의 한 야외 포차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만나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큰 틀은 늘 같다. 근황으로 시작해 직장에서 있었던 일, 고민과 스트레스 요인, 놓치면 아쉬운 다양한 이슈와 제품 정보,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남자 친구네 집안의 유쾌한 에피소드, 그리고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날도 우리는 우리만의 수다 루틴을 따랐고,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올랐을 때 수다의 종착지인 부모님 이야기에 닿았다.
-그날 나눈 이야기를 꺼내기 앞서, 언니들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째 언니는 공감력이 매우 뛰어나고 따뜻하신 분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예술적인 사고를 가지셨고, 희로애락을 숨기지 않는다. 부산에 계시는 둘째 언니는 연두부 같은 하얀 피부와 귀여운 눈웃음이 특징이다. 매사에 의연하고 긍정적이라 배울 점이 많다. 언니는 누구보다 언니를 아껴주는 좋은 분을 만나서, 언니를 똑 닮은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낳았다. 셋째 언니는, 언니는 내 마음을 모르시겠지만 나의 정신적인 멘토가 되는 분이다. 내가 본 언니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약자에 대한 연민을 아끼지 않고, 배려심이 많다. 가장 정이 많으시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묵묵하게 챙겨주신다. 그 묵묵함이 나에게는 큰 응원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남편은 이렇게 훌륭한 세 명의 누나 밑에서 아주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란 남자다. 신체도 건강하지만, 정신과 사고가 건강하다는 점이 아주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뺨을 어루만지던 그날의 밤으로 다시, 적당히 취기가 오른 우리 네 사람의 테이블로 돌아가 보자. 살다 보면 가슴속에 상처 한두 가지 씩 남아있기 마련인데, 언니들과 오빠의 마음속에는 부모님이 주신 크고 작은 상처로 인한 흉터가 있다. 원인은 같지만 그 모양은 모두 제각각인 듯 싶다. 부모로 인해 상처받았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셋째 언니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님이 한 방송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에 대한 상처가 하나씩 있는데, 그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할뿐더러 상처에 어떤 연고를 발라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뉘앙스와 함께 이런 해결책을 주셨다고. (방송을 직접 보지 않았기에 정확한 워딩은 모른다. 내가 전해 듣고 이해한 맥락은 아래와 같다.)
"엄마 혹은 아빠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그 말을 스스로가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됩니다."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3초 정도 생각하니 놀랍게도 나는 아빠에게 듣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도, 딸들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나의 모든 것을 응원한다는 말도, 대단하다는 말도, 예쁘단 말도, 우리가 아빠 삶의 목적이라는 말도 아끼지 않으셨다. 너무 감사했다. 내가 이토록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아빠가 만든 건강한 씨앗과, 엄마의 손길로 뿌리를 뻗고 싹을 틔운 묘목 덕분도 있었지만, 믿음의 기둥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조금 엉성하더라도 거르지 않고 가지를 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두며 물을 듬뿍 주었던 아빠였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어서였다. 언니들과 오빠에게 이 생각을 전하니, 아빠를 향한 존경의 말이 돌아왔다. 우리 아빠를 자랑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쑥스럽지만 싫지 않았다. 고마웠다.
아빠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바로 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열여섯이던 그해 가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급히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우리 엄마. 엄마는 아빠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자주 우리에게 진심을 담은 사랑의 말을 해 주셨다.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채림이가 엄마 딸이야?", "우리 채림이는 매력 있는 아이야",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엄마가 더 잘할게", "채림아 힘내", "동생을 잘 돌봐줘서 기특해", "엄마가 도와줄게",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든지 엄마에게 이야기해"……. 그리고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그런 엄마에게 내가 듣지 못한 말이 있었을까? 이제 와 듣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 생각의 끝에는 예상치 못했던 응어리가 있었다. 엄마를 잃은 슬픈 만큼 행복으로 채우려 노력했고, 그리운 만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예쁘게 견뎌왔다. 상처엔 새 살이 돋았고, 몇 년에 걸쳐 생긴 굳은살은 인생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 굳은살은 나의 자랑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응어리를 알아채지 못했다.
"채림아, 미안해. 엄마가 먼저 가서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우리 채림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나에게 엄마는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이니까, 내가 느끼는 힘듦과 그리움보다 짧게 끝나버린 엄마의 인생이 더욱 아쉽고 속상하니까, 누구보다 꿈 많던 엄마의 날개를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수많은 이유로 나는 먼저 떠나버린 엄마를 원망할 수 없었다. 엄마가 곁에 없음에도, 엄마에게 내 슬픔과 힘듦을 꺼내 보이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인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을 떠올린 순간에 나는 엄마가 떠나던 열여섯 그때로 돌아갔다. 나는 서른을 넘긴 성인이 되었지만 이별로 인한 상처는 그때에 멈춰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나는 함께 있던 언니들과 오빠에게 그 말을 하고 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어버렸다. 나는 나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말은 어느 날 불현듯 마음에 틈을 만들지만, 언젠가는 빈틈을 메워준다. 오늘도 나는 사랑과 응원을 담은 진심의 말로 나아가고, 치유한다. 말의 힘을 알기에 나는 더욱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을 내뱉어야지 다짐한다. 사랑한다, 모두.
아주 가끔 엄마가 꿈에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꼭 엄마 품에 안겨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만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너무 안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