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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는 아닙니다만,

2부 4장_잠은 집에서...

by 책 읽는 엄마 화영

"여기서 자지 말란 법은 없어!"라는 큰 소리와 함께 디지털 자료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속간행물실에는 다양한 잡지와 요즘 보기 힘든 신문이 비치되어 있다.

동그란 테이블 두 개와 직사각형 테이블 2개가 있는 그곳에는,

소파로 구성된 동그란 테이블이 인기가 많다.

다들 약속이나 하신 듯, 한 테이블에 한 분씩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신문과 잡지만 보다 가시는 편이다.

운동 삼아 도서관까지 나오셨을 걸 생각하니 나도 나중에 저렇게 도서관을 애용하는 할머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


하루는 할아버지 한 분이 피곤하셨는지 신문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드셨다.

평소 같았으면 나이도 지긋하시니 그러려니 하고 그냥 두었을 것이다.

하필 그날은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 분이 계셨다.

할아버지가 아주 작게 코를 고셨으나 그분은 신경이 쓰이셨나 보다.

헛기침도 하고, 책을 톡 테이블에 내려놓기도 하고 말이다.


안 되겠다 싶어 주변을 정리하는 척 어슬렁거렸다.

코를 아주 미세하게 골고 계신다.

조금 민망하실지도 모르니 할아버지 왼편으로 가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라고.

할아버지는 왼쪽 귀가 조금 안 좋으신지 안 들린다며 오른쪽으로 와서 얘기하라고 하신다.

오른편으로 가서 다시 조용히 말씀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버럭 성질을 내셨다.

“여기서 자면 안 된다는 그런 법은 없어! 신문 보다가 잠깐 잠이 들 수도 있지!!”

할아버님, 잠깐 조신 거 아니고 대놓고 주무셨잖아요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배려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켰다.

할아버님, 코를 살짝 고셨어요라고 말씀드렸으나

이미 화가 나신 분께 내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거기서 더 이상 실랑이를 할 수도, 내 목소리는 이미 전달되지도 않기에

슬며시 자리를 떴으나 할아버님은 큰 목소리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셨다.

계속 혼잣말로 말씀하셨지만 목소리가 크셨다.

디지털 자료실 전체가 어수선해진다.


드디어 그 코 고는 소리를 못 견디셨던 분이 한 말씀하셨다.

할아버님이 코를 고셨다고. 어르신이라 돌려서 좋게 말씀하신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할아버지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 한다고.

왜 자면 안 되냐고 하는 거냐고.


데스크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했다.

배려가 독이 되었구나.

다음부터 말투는 부드럽게 팩트만 얘기해야지라고.

하지만 다음번에는 그렇게 얘기한다고 또 화내시는 분들이 계시겠지?

처음 보는 사람의 성향까지 맞춰가며 말을 전달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내게 첫 진상 아닌 진상이었던 할아버지.

한참 신문을 읽으신 뒤 조용히 나가시며 “미안해요.”라고 하신다.

나도 덩달아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들어가세요~”한다.


이 분은 아마 또 오실 분이니 조그만 화에 휘둘리지 않아야지.

이곳에서 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다시 배워나간다.



그 후의 추가 에피소드.

도서관의 휴관일이 변경될 예정이라 한 달 전부터 도서관에 고지 및 김포 시립도서관 내 고지, 문자 알림 등으로 알렸으나…

그 할아버지는 도서관에 오셔서 또 버럭 하셨다.

휴관일 변경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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