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20
사계절 중 유독 힘들었던 여름이, 유난히 애틋하게 바뀐 2025년이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곳에 살고 있는 우리는
둘째가 태어나던 해에 작고 소중한 생명을 데려왔다.
동네 친한 언니네에는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3마리 있었고,
그중 한 마리가 새끼를 7마리나 낳았다.
평소 '마당 있는 집에 아이, 그리고 반려견'이라는 것에 로망이 있던 신랑의 뜻을 따라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렇게 우리 4명과 달곰이 가족이 된 순간이다.
반려견 경험이 없던 나와 겨우 6개월 지난 둘째가 있는 우리 집에서
미안하게도 달곰이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하였다.
거실서 지내던 아기 달곰이는 유치가 빠질 무렵엔 뒷베란다로...
점점 덩치가 커지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마당으로.
그렇게 마당에서 사는, 집 지키는 개가 되어갔다.
아이들 등하교하느라 자주 집을 들락날락하는 게 미안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달곰, 갔다 올게."라는 인사에
따라 나오던 달곰인 어느새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려주는 아이가 되었다.
더운 여름엔 현관 열어놓고 한껏 선풍기를 틀어주면 그 앞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추운 겨울엔 거실 창 앞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며
달곰이는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었을까?
아님 우리가 나오길 한없이 기다렸을까?
한 번도 짖지 않을 정도로 너무 순해서,
성대에 문제가 있는 건가라는 착각할 정도로 순했던 너.
그런 달곰인 어느새 사람 나이로 7살이 되었고
그 무렵 나도 달곰이를 데려온 후 처음으로 사회에 나갔다.
말 못 하는 개도 그걸 아는지
나갈 때마다 평소보다 더 애틋하게 쳐다보곤 한다.
또 미안한 마음에 갔다 올게~라고 말하며 뒤돌아선다.
삐진 건지 따라 나오지도 않고 등 돌린 채 앉아있던 너.
한 번이라도 더 만져줄 걸 그랬어라는 생각은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다.
어느새 7월, 여름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여름이라 생각했기에 그날도 물만 연신 따라주며 발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다.
물 한 그릇 주고 부족해 보여 또 주고, 그래도 부족해 보여 또 주고...
그러고 무심히 뒤돌아선다 나는...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아무 생각 없이 받은 그 전화는 순식간에 나를 거세고 깊은 울음바다로 던져버렸다.
어쩌다, 어떻게...
혼자 고통 속에 헤맸을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도착한 집에서 너는 평소처럼 옆으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따뜻한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굳어버린 너를 보며
신랑과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더 잘해줄 걸이라는 생각과 주말에 산책도 못 갔는데라는 몹쓸 생각만이 우리를 휘젓는다.
아직은 우리가 남은 날이 더 있을 거라는 착각, 오늘이 마지막 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일상을 보냈을 뿐이다.
이제 선풍기도 못 틀어주는데 낮에는 어쩌나라는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
너는 우리를 배려해 주듯이, 또 순하디 순하게 떠났다.
한번 짖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나만큼이나 몸무게가 나갔던 너는
조그만 상자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신랑이 던진 "우리가 이렇게 순한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너무나 단호하게 아니, 이렇게 순한 아이는 우리 생에 다시없어라고 답한다.
새로운 반려견 들일 생각도 할 수 없다.
달곰이 생각에 그 아이에게 더 잘해주다간
먼저 떠난 너에게 너무나 미안할 것 같아서 말이다.
너가 떠난 후 야속하게도 더위가 한층 가라앉는다.
오늘만 잘 버텼어도 내일은 낮에 사람이 있어 너와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날만 잘 버텼어도 너는 우리와 함께 또 한 번의 여름을 보낼 수 있었을까?
둘째는 검정 강아지를 다시 데려오자 말한다.
"엄마는 너무 미안해서 강아지를 다시는 데려올 수 없을 거 같아."라는 말에
입꼬리가 삐죽삐죽 내려가기 시작한다.
둘째는 그렇게 생명과 죽음이라는 걸 배워간다.
큰 아이는 말한다.
"엄마, 책에서 봤는데 우리가 마음속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계속 생각하면 그 아이는 영혼이 남아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사라진대."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리며 항상 마음속 상자에 달곰이를 넣어놔야겠다 다짐한다.
아직도 우리는 달곰이 항상 앉아있던 자리를 보며 인사하곤 한다.
"갔다 올게~"라고..
달곰이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있다.
우리 마음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