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9
"엄마는 왜 맨날 언니 학교만 도와줘? 우리 유치원은 왜 안 도와줘?"
그 한마디에 무턱대고 약속을 했다.
엄마가 내년에 할 수 있으면 할게라고.
그 내년에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근무시간이 일반적이지는 않아 오후 1시 출근, 밤 10시 퇴근.
오후 출근이라 아침은 비교적 시간이 되어 아이들 등교를 직접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하던 도서어머니회도 내려놓아야 할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도서어머니회도 유치원 운영위원회도 하기 벅차다.
하지만 매번 큰 아이의 환경만 신경 써준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작년에 유치원 운영위원회 활동을 했던 동네 지인에게 어떤 활동을 주로 하는지 물어본다.
분기별로 오전에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고 끝난단다.
회의만 참석하면 출근을 어찌어찌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욕심을 내본다.
혹시나 같은 반 다른 엄마가 운영위원회를 신청할까 싶어 문의도 한다.
운영위원회 하고 싶다고...
나도 참 극성이다 싶다.
그렇게 워킹맘이면서 유치원 운영위원회 활동에 도서어머니회까지 하려 한다.
인원이 모집되고 첫 모임이 잡혔다.
이사장님, 원장님이야 성향을 알고 있으나 유치원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어 낯설다.
하나 둘 등장하는데, 학교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학교에서 했던 활동은 도서관 봉사활동이어서
사서 선생님의 보조로 도움을 드리면 되는 건데...
운영위원회는 다른가 보다.
결정적으로 다들 진심으로 적극적이다.
열정이 놀랍기도 부럽기도 하다.
(사실, 놀라운 마음이 더 크지만...)
제일 난감한 시간, 위원장을 뽑는 시간.
학교라면 다들 눈치 보며 눈길 피하기 바쁘다.
열정이 남달라서인지 위원장 얘기가 나오자마자 번쩍 손드는 엄마가 있다.
그렇게 쉽게 위원장이 결정된다.
이제 부위원장 차례.
12명의 위원회 중 아빠가 있다.
위원장이 아빠에게 살포시 아니, 대놓고 권유한다.
그걸 또 물러서지 않고 받아들이는 아빠.
남은 건, 급식위원회 4명.
일 다닌다고 오후에 하는 행사는 참여가 어려워 급식위원회는 해볼까 싶다.
해볼까 라는 생각이 끝나고 손을 드려하는데
이미 모집이 끝났다.
당혹스럽다...
첫 회의라 그런지 얘기가 너무 길어져 출근 시간에 맞춰 급히 나온다.
그렇게 오늘의 모임은 끝난 줄 알았다.
몇 시간 뒤 핸드폰에서 카톡 알림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그냥 분기별로 회의만 하는 게 아니구나...
열정적인 엄마들이 많아서 올해가 다른 건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현장학습 장소도 한 사람당 하나씩 추천해야 하고,
개별적으로 본인 아이의 반 단톡방도 만들자 하고...
역시나 I는 적응하기 힘든 이 유치원...
지난 운동회 때 느꼈어야 하는 건데...
나, 무언가 큰 일을 벌인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