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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Dec 21. 2024

30cm 내 조망권

오지라퍼의 절규

 

 오랜만에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햇살이 좋아 책을 읽기 위해 커튼을 젖혔다. 버스 창밖 풍경이 온통 초록이어서 힐끗거리느라 집중해서 읽을 수 없었다. 멍하게 풍경을 바라봐도 좋겠다 싶었지만 읽고 싶어 했던 책을 손에 쥐었으니 다시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한참을 신나게 읽다가 창밖의 빛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고민이 되었다. 문득 남을 먼저 배려하는 내 습관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가 30cm 정도의 내 조망권도 못 가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은 오래된 미덕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려가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그렇다 서로의 안전을 위하는 것처럼 배려는 서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습관처럼 일방적인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관습처럼 몸에 베인 일방적인 배려를 말이다. 이 모습이 남들 눈에는 배려가 많은 사람으로, 친절한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그러나 정작 나를 위한 배려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친한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진정한 배려가 아니겠느냐?"라고 말이다. 왜 당신이 해주고 싶은데로 해주고 그걸 배려했다고 하느냐고도 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몹시 당황스럽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 보니 너무도 맞는 말이었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상대방은 이런 배려를 원할 거야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배려가 상대방도 좋아할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 아끼던 지인이기에 나는 그 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란 배려는 다 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서, 내가 아끼니깐 내 방식대로의 배려였으리라. 그걸 미처 몰랐었는데, 그 지인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지인은 그렇게 얘기해야 하는 자기 입장도 속상하다고 했다.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은망덕한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려받고도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 뒤로 나는 누군가를 배려할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배려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배려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서운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던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한층 성숙해질 수 있었다. 또 진정한 배려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인간관계가 조금은 수월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지나 내가 또 성장을 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남을 위한 배려는 알았으나 나를 위한 배려는 생각해 보지 못한 내가 이제라도 나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어떤 것이 날 위한 배려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배려받았을 때의 기쁨처럼 스스로에게 배려받았을 때도 충분히 기쁘지 않을까라고 감히 짐작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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