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을 돌봐라
나는 곰팡이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2019년, 아름다움에 정해진 기준이 있는듯한 교육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껴 아름다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찾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모든 순간에 숨어있는 투박하나 따뜻하고 미천하나 강인함이 느껴지는 신비한 생명력에 가까웠지만 확실하게 정의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방 안에 크로와상이 찌그러져 뭉쳐져 있는 것이 순간적으로 점토덩어리처럼 보였고 나는 흥미로운 상상으로 마음이 뜨듯-몽실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아름다움의 기준을 찾기 위해 점토와 가소성은 유사하지만 다른 물성은 대비되는'밀가루'반죽으로 물레실에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의 최종목표는 점토의 수축하고 튼튼한 특성과 반대로 팽창하고 썩어 부서지는, 자유롭고 유동적인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2020년, 빵도자기 표면의 곰팡이의 순수한 색감과 질감이 주는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우연히, 작품의 표면에서 발견한 푸른곰팡이는 온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띠고 작품을 감싼다는 점에서도 자기의 유약과 비슷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스튜디오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부엌과 화장실에 있는 재료를 밀가루와 조합해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 처음 점토의 물성과 기법을 배웠던 것처럼 시간과 온도, 바람, 습도에 따라 변화하는 빵의 물성을 관찰기록하며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 오감으로 직접 터득했다.
2022년, 빵의 유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형태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궁극적으로'고유한 생명성’에 가장 큰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생명성’을 재료로 캔버스를 만들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물감을 칠하듯이 다채로운 색깔을 만들어내며 시간에 따라 주변 환경과 물리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완성되어 간다. 작품 표면의 한쪽으로 쏠려있는 곰팡이솜털들은 우리에게 바람을 느끼게 하고 채도가 낮은 푸른색은 그것이 흡수한 적당한 햇빛과 오븐의 온도, 그리고 시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만물의 근원인 땅으로 돌아가 무한한 잠재성을 지니게 된다. 그렇게 나는 자연 속시간의 흐름을 따라 작품의 촉감과 색감, 식감과 향기, 미각적인 요소를 시각적으로 구성하고 관찰하며 그것들이 나타내는 그림의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2024년, 이러한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다. 퍼포먼스와 사진, 영상 등의 소멸하는 작품의 기록이 온라인의 척박하고 풍요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재존재화되는 과정'이 이후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교수님들과의 인터뷰에서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해 여전히 나 스스로 답을 찾고 있다.
"시간과 우연성을 담은 작업에서, 대중이 당신의 예술적 자질과 표현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요?" 나는 그동안 예중, 예고, 대학의 오랜 입시미술을 통해 대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체화시켰고, 그것을 기반으로 대학에서는 비슷한 길을 걸어온 동료들과 작업의 발상과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더 비중을 두었다. 그래서 표현력이나 예술적 자질을 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면접을 통해, 앞으로는 대중에게 나의 생각과 작업을 다방면에서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뭐래도 내 작업을 제대로 전달해 낼 거라는 더 확고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만, 나의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음을 배웠다. 부끄러웠던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나와 동일시해 온 작업의 본질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침에 눈만 뜨면 막막한 마음으로 숨을 크게 뱉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예술가로 살고 있는 건가? 그림을 그리고 조각한다는 건 한국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나의 언어인데, 이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어떤 자질을 키워야 하나? 경제적 기반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유한한 작품을 어떻게 보관하고 의미를 공유하고 거래할 것인가? 평생 탐구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하는 흔하고 익숙한 질문들 속에서 결국 내가 계속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움의 물성'이고 그것을 발견하는 시선을 나누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시선이 단 10명에게라도 전해져 그들의 10분, 1시간, 하루동안의 마음에라도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내게 의미가 있다. 당장 어제와 오늘의 생각이 바뀌듯, 지금의 내가 부족하고 나중에 부끄러워질지라도, 수치심 좀 느끼고 더 나아질 각오로 나의 작업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 빵도자기로 레시피북을 만들었을 때 관객들에게 받은 피드백에서 문자와 시각적 언어가 함께할 때 진입장벽을 낮추고 더 큰 위로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가을 프로젝트에서도 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한 달을 사는 하루살이의 30일간의 여행기"를 통해 본인과 익명의 예술가들(대중)에게 ASMR처럼 무시당해도 덜 부끄럽게 조용하고 성실하게 말을 걸어보고자 한다.
입이 없어 말을 못 하지만 얼떨결에 장수하게 된 하루살이의 시선을 통해, 자연의 흐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와 찰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채원, <청자비상감운학문매병 2호>, 밀가루, 샴푸, 30x30x45cm,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