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는 친구가 많이 없다. 애초에 없다기보다 커가면서 인간관계가 좁고 깊어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태생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서툴러서 타인과의 교류에서 빠르게 피로감을 느끼는 만큼, 불필요한 사람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고 결국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이 몇 명 없게 된 거다. 내가 ‘친구’라고 느끼는 장벽이 높아졌다고 해야 할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는 능숙하다는 것인데, 그래도 가끔은 지겹도록 일상을 공유하고, 친구 여럿과 왁자하게 떠들고 소리 지르며 웃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주로 어린 시절 고향친구들과 그런 시간들을 많이 보내는 것 같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그런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런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오래된 친구들 중에서도 삐걱대는 관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잃어버린 조각처럼 꼭 맞았던 친구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생겨난 거다. 처음에는 그저 그날의 상태를, 기분을, 상황을 탓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그건 순간의 일이 아닌 되돌릴 수 없는 변화였다.
10년, 20년 세월동안 한결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배우고 성장하고 변화한다. 나 역시도 그러하고, 나의 친구 역시도 그러하다. 그 과정에서 둘 중 하나라도 변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는 거다.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데, 예전의 나의 모습에 머물러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친구와는 점점 만나고 싶어지지가 않는다. 그런 친구를 만나고 오면 항상 마음 한 켠에 하지 못한 말들이 쌓이고 쌓여 언제나 무겁고 찝찝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게 되니까.
물건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오래된 것이 좋다는 말은 이젠 절대 진리가 아니라고 느낀다. 오래된 것은 잘 보존해야만 숙성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에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은 없겠으나, 그런 친구가 없거나 혹은 없어졌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는 진정한 나의 자아와 인생의 가치관이 세워져있는 상태에서 만난 것이기 때문에, 더 깊게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고 잘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더 쉽게 행복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도 모른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환경적으로 쉽지 않긴 하다만, 그래도 앞으로 살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만나고 돌아오면 가슴이 후련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온몸이 뿌듯해지는 그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