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에서 중요한 두 개념에 대한 간결한 정리
오늘은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이 제시한 Affordance와 Signifier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도널드 노먼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심리학을 공부하고, 디자인에 심리학을 적용하여 오늘날의 UX의 개념을 있게 한 인물이다. 오늘 소개할 그의 저서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는 UX 디자인의 바이블로 불린다.
도날드 노먼은 그의 책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Affordance와 Signifier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Affordance는 원래 게슈탈트 심리학자인 J. J. Gibson의 개념이며, 이를 노먼이 디자인으로 가져온 것이다. Signifier의 경우 본래 학문적으로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디자이너들이 Affordance의 개념과 Affordance를 나타내기 위한 Sign의 개념을 혼동하자, 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먼이 제시한 개념이다.
Affordance는 사물과 그 사물을 다루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사물이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가능성이 Affordance이다. 의자는 평평한 판과 다리가 있다. 평평한 판은 땅과 수평이며 충분한 넓이와 적절한 높이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몸을 지탱해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따라서 의자는 앉을 수 있다. 여기서 의자는 "앉을 수 있음"이라는 Affordance를 사람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 Affordance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사람 혹은 에이전트에 따라 변한다. 만약 의자의 다리가 높아, 걸음마를 떼지 못한 갓난아기는 의자에 오를 수 없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의자는 갓난아기에게 앉을 수 있는 자리로서의 Affordance를 제공하지 못한다. 또, 코끼리가 그 의자에 앉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만약 코끼리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의자여서, 코끼리가 앉으려고 할 때 그 의자가 부서져 버린다면, 의자는 코끼리에게 앉을 수 있는 Affordance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Affordance는 사물의 고유한 기능이 아니다. 그 사물이 특정 에이전트(보통은 사람)를 만날 때 형성되는 관계이다.
Affordance의 종류로는 사실 Affordance 뿐만 아니라 Anti-affordance도 존재한다. 점점 더 어려워져서 미안하다. 설명을 이어나가 보자면, Affordance는 존재하는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반면, Anti-affordance는 상호작용을 막는 가능성의 존재를 의미한다. 설명을 읽으면 어렵지만,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 가능하다. 유리컵을 생각해보자. 유리잔은 투명하기에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액체의 색을 볼 수 있다. 유리잔은 내부에 담긴 것을 보여주는 Affordance를 가진다. 반면에, 유리잔은 공기를 포함해 대부분의 물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유리잔은 물을 담았을 때 물이 흐르는 것을 막는다. 즉 그것은 상호작용을 막는 기능, 담긴 물질이 흘러나가지 못하게 막는 Anti-affordance를 가진다.
한편, 시각장애인에게는 유리는 속에 있는 내용물을 보여주지 못한다. 따라서 속에 담긴 것을 보여주는 Affordance는 시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제한되거나 없을 수 있는 Affordance이다.
Signifier는 Affordance의 존재를 알려주는 감각적 단서이다. 모든 Affordance와 Anti-affordance가 다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리창의 경우, 사람이나 새가 통과하지 못하는 Anti-affordance를 가지지만, 너무나 깨끗하고 투명해 그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경우, 새들이나 사람들이 유리가 없다고 생각해 들어가려다가 부딪히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이 유리창의 Anti-affordance는 지각되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유리창에 "유리 조심"이라는 단어가 붙어있거나, 혹은 하다못해 포켓몬스터 스티커라도 붙어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리의 존재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유리에 머리를 부딪히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Affordance나 Anti-affordance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것을 Signifier라고 한다.
대부분의 표지판이나 사인은 Signifier로 작용한다. 등산을 하다 보면 길이 사라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 길을 알려주는 팻말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팻말을 따라가게 된다. 팻말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Affordance를 제공하는 길의 존재를 알려주는 Signifier가 된다.
Signifier는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일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표지판은 의도적인 Signifier이다. 반면에 의도하지 않은 Signifier 또한 존재 가능하다. 예를 들어, 넓은 잔디밭 좌우로 입구와 출구가 있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닐 것이다. 가로질러 다니다 보면 잔디가 해져 흙이 드러나 오솔길 형태가 된다. 이 오솔길 형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길을 통해 잔디밭을 가로지르라는 Signifier로 기능한다. 분명,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잔디밭에 길을 낸 수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다니도록 돕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의도하였든, 하지 않았든, 잔디밭에 난 오솔길은 걸어서 가로지를 수 있다는 Affordance를 보여주는 Signifier이다.
노먼에 따르면 책갈피 역시 훌륭한 Signifier이다. 책갈피는 우리가 어디까지 책을 읽었는지를 알려준다. 한편, 책갈피는 비록 우리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읽어야 할 부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려주는 Signifier이다. 책갈피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읽었고 남은 양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Affordance와 Signifier의 개념은 생소할 수 있고, 이해하기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것은 Affordance가 사물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사용하는 자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 여기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위의 사진은 버스킹 공연을 하는 기타리스트의 기타 가방이다. 오전 무렵, 한 기타리스트가 버스킹 공연을 하기 위해 공원에 온다. 그는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고 스트랩을 어깨에 걸친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은 다섯 걸음쯤 앞에 열어두고, 자신의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를 꺼내어 그 기타 가방 안에 넣어둔다.
이 상황에서 기타 가방은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로서의 Affordance를 제공한다. 기타리스트의 기타는 이 기타 가방에 쏘옥 들어간다. 하지만, 기타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타보다 작은 것들은 이 가방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기타리스트는 왜 굳이 자신의 가방을 앞에 펼쳐놓았을까? 때때로는 가방을 열어서 펼쳐놓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Signifier로 작용한다. 우리는 이 기타 가방의 의미를 이미 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기타리스트는 친절하게 자신의 지갑에서 1천 원을 꺼내 기타 가방에 넣어 두었다.
이제 우리는 가방에 담긴 천 원짜리를 보고, 버스킹 공연을 듣고 기타 가방에 우리 돈을 넣어 기타리스트를 후원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기타 가방은 돈을 담을 수 있는 Affordance를 제공하고, 거기에 담긴 천 원짜리는, 음악을 잘 들었으면 돈을 후원해 달라는 Signifier로 작용한다.
노먼은 Affordance보다 Affordance를 사용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Signifier가 디자이너에게 더 직접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품에 담긴 기능을 잘 몰라서 제대로 쓰지 못한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기능은 없는 기능이나 마찬가지이다. Signifier는 해당 디자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다시 말해 Affordance의 존재를 알려주는 감각적 단서이기에, Affordance보다도 더 중요하다.
출처: Don Norman,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BASIC BOOKS,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