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도 진화해야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진 우르남무 법전은 기원전 2100년에서 기원전 205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전에조차 '도둑질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하여 도둑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전 또한 도둑질을 언급하며 '도둑질한 것의 10배 이상을 배상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형'이라고 적시한다. 고조선의 8조법 중 한 법 역시 도둑에 관한 것으로 '도둑질 한 사람은 50만 전을 벌금으로 내야한다. 내지 못할 경우 데려다가 노비로 삼는다'라고 전해진다.
이처럼 도둑질에 대한 역사는 인류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 사유재산이 탄생하면서부터 도둑 또한 탄생했으리라. 도둑은 분명 농사꾼 만큼이나 오래된 직업일 것이다. 농사를 짓게 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김에 따라 전업농사꾼과 사유재산이 생겼다. 그리고 도둑 또한 생겼다.
수천년동안 도둑질은 비교적 단순했다. 때로는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몰래 훔쳐오는 것이었다면, 때로는 무기를 들고 상대를 위협하며 가진 것을 뺏는 행위였다. 담을 넘고, 자물쇠를 부수고 주머니에 곡식과 패물을 담아 달아나는 것이었다.
은행이 생긴 뒤로는 은행은 주요 도둑질 대상이었다. 대항해시대에는 무역선을 상대로한 도둑질, 즉 해적질이 기승을 부렸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는 은행 만큼이나 역마차, 기차 등이 도둑질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간간히 편의점 강도나 이웃집에 침입한 강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도둑들은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 위주였다. 소매치기도, 해적도, 마적떼도, 편의점 강도도 잘 교육받고 똑똑한 사람이기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누구나 도둑질은 할 수 있었다. 도둑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들어 이런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졌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해커라는 새로운 도둑이 등장했다. 블랙 해커, 혹은 크래커로 불리는 그들은 디지털 화폐나 정보 등을 훔치고 그것으로 돈을 번다. 비트코인 거래소를 습격하고, 은행계좌정보 등을 키로거로 빼와 계좌이체를 통해 돈을 훔치기도 한다. 비밀 정보를 해킹하여 댓가를 요구하거나 정보를 인질로 삼아 몸값을 요구하기도 한다.
2014년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틴곡스가 해킹당했다. 해킹으로 인해 미화 6억 달러, 한화로 6819억 원의 비트코인이 도난당했다. 회사는 결국 파산했고, 거래소 이용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2017년 4월 한국의 비트코인 거래소 YAPIZON이 해킹을 당해 미화 500만 달러, 한화로 56억 원 상당을 도난당했다.
2017년 6월 웹 호스팅 업체 나야나가 랜섬웨어의 공격을 받았다. 해커는 153대의 서버에 랜섬웨어를 감염시키고 호스팅 이용자 홈페이지 3,400개를 인질로 삼아 몸값을 요구했다. 몸값을 주지 않으면 랜섬웨어를 풀 수 없어 3,400개의 웹페이지가 문을 닫을 판이었다. 결국 회사는 해커에게 13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제공하고 키를 얻어 랜섬웨어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해킹, 소위 디지털 도둑질의 경우 피해금액이 종래의 도둑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크며, 범죄자를 파악하고 체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세 사건으로 해커가 거둔 돈은 6819억 원, 56억 원, 13억 원이다. 그렇다면 도둑질은 어떠할까?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산 농협은행 총기강도 사건에서 범죄 피의자는 2017년 4월 은행에 침입해 1,536만원을 훔쳐 달아났다가 범행 55시간 만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2017년 6월 발생한 김해 편의점 강도사건에서 피의자는 2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가 2일만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강도죄의 형량은 최소 1년 6월에서 최장 8년까지이다.은행 강도로 1,536만원을 훔치고 짊어지기엔 큰 짐이고, 더욱이 편의점 강도로 20만원을 훔치고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큰 짐이다. 갈수록 전자상거래가 보편화되고 전산을 통한 거래가 빈번해지면서 은행도, 편의점도, 가정에도 이전처럼 현금을 많이 보유하지 않는다. 털어봐야 평생 놀고 먹을 밑천을 결코 획득할 수 없다. 오히려 얼마 안 되는 돈을 훔치고 평생 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아가게 된다. 반면에 사이버 공격을 통해 해커들이 얻는 이득은 종래의 강도사건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고, 비트코인을 활용하고 해외 IP를 이용하는 등 교묘한 방식을 이용하면 사실상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21세기에 도둑으로 살아남기'라는 말은 조금은 자극적이다. 마치 도둑이 좋은 것처럼 미화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핵심은 이것이다. 21세기에는 도둑질을 하더라도 IT 기술을 알아야 한다. 이왕 도둑질을 하겠다면 힘들게 총을 구해 은행을 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첨단 IT 기술을 모르고서는 도둑으로도 살아남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을 공부하고 기술을 이해하며 변화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