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지점

by 손채원


가을의 지점


한결 느긋하게 뜨는 고소한 아침 볕

우아하게 익어가는 나뭇잎들

낙하하는 매미와 비상하는 잠자리

성큼, 지는 아릿한 오렌지빛 석양

부끄럼 없이 춤추는 들꽃과 풀꽃

손 끝을 스치는 보드라운 니트 소매

이 모든 시간과 풍경, 감각 사이를 부유하는

자잘한 그리움들


가을에 태어나 결국 가을의 성정을 닮아 그럴까. 하루아침에 선선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미우면서도 반 뼘 정도 깊어진 자연의 색채에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소설이든 시든 여백 어딘가에 주연의 문장으로 욱여넣고 싶은 글이 떠오른다.


“제아무리 내내 여름처럼 호기롭게 살 거라 다짐해도 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마음이 차분하고 쌉싸름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가 되면, 비로소 나의 인생이 가을로 접어들었구나 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면 될 것이야. 가을을 겪지 않은 인간은 생각도 마음도 다 설익어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너무 쉽게 해. 나는 네가 얼른 그 시간을 통과했으면 좋겠어. 널 지금보다 더 완전하게 사랑하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