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d little town, 베를린
영화이자 뮤지컬 ‘헤드윅’의 노래 중 ‘wicked little town’은 두 가지 버전 이 있다. 하나는 헤드윅이 부른 버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헤드윅을 버린 연인 토미의 버전. 극의 후반부에 이르면 나오는 토미의 버전에서 이런 가사가 있다. ‘이제는 받아들여봐요, 당신 존재의 이유를’. 이 가사가 참 아프게 들렸다. 그 대단한 존재의 이유 때문에 평생을 헤매던 헤드윅에게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버리고 간 주제에 왜 토미가 훈수를 두냐고 투덜거렸다. 그런데도 그 부분을 계속 되뇌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두 개로 분리된 그 도시, 내가 태어난 곳
여정의 마지막으로, 헤드윅이 태어난 도시인 베를린에 왔다. 정확하게는 반만 맞는 말이다. 헤드윅은 베를린 장벽이 이 도시를 둘로 갈라놓은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독일은 한국처럼 분단을 겪었고, 베를린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 도시는 온 몸으로 전쟁과 분단을 기억하려 한다.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무너진 교회를 그대로 두고, 도시를 찢어놓은 장벽에 그대로 벽화를 채워 넣은 것처럼 말이다.
걷다 보면 도심 한복판 너른 공간에 갑자기 정확하게 재단된 돌 수 백 개가 펼쳐진다. 홀로코스트 추모비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수많은 돌들이 죽음을 침묵으로 기억한다. 공교롭게도 추모비 가까이엔 히틀러의 벙커였던 장소도 있다. 그냥 지나칠 뻔 했을 정도로 이렇다 할 표시도 없는 공터였다. 잠시 있다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영어를 쓰는 것을 보니 아마 관광객인 것 같다. 가이드는 사람들을 모여 앉게 하고 이 곳이 히틀러의 벙커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도 아마 예상 못했는지 다같이 ‘아-‘하고 놀란다.
곳곳에는 세계대전과 관련한 전시장들이 많다. ‘공포의 지형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tophography of terror’은 나치를 비롯한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보여준다. 유대인을 비롯하여 동성애자, 히피 등 ‘반사회적 분자들’을 탄압한 역사다. 끔찍한 기록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한 독일 여성이 폴란드 인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고 있는 광장 한 가운데에서 삭발 처형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결코 외면하지 않고 끄집어 내어 기억해야 한다고, 사진 속 여자의 눈빛이 말한다.
하지만 이 도시의 성실한 반성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장면이 목격되곤 한다. 베를린 장벽의 벽화에서 마주치는 후지산과 일장기의 그림, 그 앞에서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는 일본인 관광객의 모습처럼 말이다. 비슷하고도 다른 기념사진은 ‘체크포인트 찰리’에도 있다.
헤드윅을 꾀어낸 로빈슨 하사관이 근무했을지도 모를 ‘체크포인트 찰리’는 연합군이 주둔하던 국경 검문소다. 동독을 탈출하려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총을 맞고 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가 되어버렸다.
검문소 앞에는 로빈슨 하사관을 꼭 닮은 사람이 연합군의 군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준다. 냉전의 최전방이었던 이 장소엔 결국 성조기와 미군, 맥도날드가 자리한다. 그 곳에 중국인 가족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다.
베를린은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다섯 개의 거대한 박물관이 ‘박물관 섬’ 지역에 모여있다. 이집트, 이슬람, 그리스로마 시대 등의 유물들이 가득 전시되어있다. 바빌론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떼어온 ‘이슈타르의 문’ 등 전체를 그대로 가져온 유적지도 여럿 있다. 히틀러가 반환을 적극적으로 거부한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흉상도 여기 있다.
박물관들을 연달아 보자니 방대한 양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불편했다. 박물관은 좋은 학습의 장이지만 제국주의의 온상이기도 하다. 모든 유물과 유적이 전시장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침략과 약탈이 있었을지 짐작할 수 없다. 수집은 자랑이 아니다.
화려하게 우뚝 솟은 ‘전승기념탑’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로 꼽힌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천사가 걸터 앉아 있기도 했다. 동시에 인간을 무지막지하게 학살했을 전쟁을 기념하는 탑이기도 하다. 이 탑이 이 도시에 있어도 되는 걸까라는 물음표를 남기며 지나친다. 특히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함락한 기념으로 장식을 더했던 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렇듯 전쟁에 신중한 줄만 알았던 이 도시에도 간극은 존재한다. 그 간극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있었다. ‘Haus der Kulturen der Welt’의 ‘2 or 3 tigers’ 전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물인 호랑이가 주 메타포다. 작업들을 통해 호랑이는 민족의 영물이 되기도, 군부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곧 전시는 호랑이를 통해 아시아에 얽히고 설킨 제국주의, 민족주의, 군사주의의 비극을 말한다.
후지산 등의 자수가 요란한 스카쟌들이 입구에 주렁주렁 걸려있다. 스카쟌은 한국전쟁 시기 일본 내 미군기지에서 인기 있는 기념품으로 사가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스트릿 패션의 아이템으로 등장했지만 말이다. 야쿠자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옷들 사이에 호랑이의 자수도 보인다.
박찬경과 임민욱 등 굵직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도 만날 수 있었다. 임흥순의 ‘귀향’은 ‘맹호부대’ 등 한국군이 참전했던 베트남전을 조명한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잡은 거대한 호랑이를 자랑스럽게 들고 찍은 기념사진이 눈이 들어온다.
아시아는 분명 제국주의의 피지배국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먹이사슬 내에서 가해를 주도한다. 작가들은 그 다단한 경험을 작업으로 말한다. 아시아 작가로만 채워진 이 전시가 내겐 인상적이었다. 사실 카셀도 뮌스터도, 그 밖에 다른 미술관에서도 아시아 작가의 작업이 많지는 않았다.
아시아 작가가 영어권도 아닌 이 나라에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도 중국작가 아이웨이웨이가 교수인 학교가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반체제적 작업을 주로 하여 중국정부의 탄압과 구금이 끊이지 않기도 했다. 그런 그를 베를린 예술대학이 작년부터 교수로 초청하였다. 그래서일까, 유학을 온다면 이 곳을 택하고 싶었다.
전시를 보고 난 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베를린 예술대학을 들렸다. 그래피티로 뒤덮인 벽이 많았지만, 학교는 온통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한 낮이라 학교 곳곳에 환한 볕이 들어왔다. 학생들은 제각기 장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재를 슥삭슥삭 자르거나 보안경을 쓰고 과학실험 같은 무언가를 하거나.
천천히 학교를 거닐었다. 늘 상상으로만 그리던 학교였다. 다만 눈으로 확인하니 알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지만 와본 것만으로 충분하게 느껴졌다. 이미 나의 마음은 미술의 장으로부터 많이 멀어진 것도 같다. 여정의 끝에 다다른 만큼, 마음도 정리를 마친 것 같다
늘 상상만으로 짐작했던 미술의 세계를 직접 눈에 담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이다. 워홀의 거대한 마오는 붓터치가 느껴졌고, 안젤름키퍼의 덕지덕지 붙은 페인팅은 묵직한 부피로 다가왔다. 요셉 보이스의 거대한 설치는 ‘이게 바로 현대미술’이다 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 했다. 뮌스터도, 카셀도, 그리고 꿈만 꾸었던 베를린예술대학교의 교정도 실제로 마주할 때마다 작은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여전히 미술은 나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이고 선생님이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제 조금은 놓아보려고 한다. 부숴도 여전히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처럼, 언제까지고 미술이라는 장벽을 어슬렁거릴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동안 미술이 나의 ‘존재의 이유’라고 믿어 온 만큼 말이다. 그래서 토미가 노래하던 ‘존재의 이유’가 자꾸 귀에 걸렸는지도.
그런데 이제 보니 원곡의 토미는 존재의 이유 같은 것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좀 잔인하지만 운명도 인연도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걸 찾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홀로 방황하는 헤드윅에게 너무 힘들 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노래할 뿐.
받아들여야 할 존재의 이유 따위 없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다. 사실은 그 대단한 장벽도 한 뼘 두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손에 잡힐 듯 맑은 베를린의 하늘만큼 마음이 말끔하다. 물론 베를린은 느닷없이 비를 마구 퍼붓기도 하지만.
헤드윅이 태어난 도시를 떠나며 다시 헤드윅을 본다. 그, 아니 그녀의 노랫말이 조근거리는 위로로 들린다. 기약 없는 작별이지만, 내게 잠시 동안 품을 내주어서 고마웠던 베를린 안녕. 헤드윅에겐 사악하고 못된 도시, 나에겐 꿈의 도시 베를린 안녕.
Remember Mrs. Lot and when she turned around
떠날땐 절대로 돌아보지말아요
And if you've got no other choice
만약 갈 곳이 없다면
You know you can follow my voice
내 목소릴 따라와요
Through the dark turns and noise
어두운 소음만이 난무하는
Of this wicked little town
이 사악한 도시를 지나서
*이 글은 <아는 동네>에 2017년 연재했던 글을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