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생의 졸업여행3

If you are looking for something, 카셀

by 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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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에서 카셀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졸업 후 비엔나에서 유학하고 있던 언니였다. 너무 놀라서 절로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언니도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본 뒤 카셀 도큐멘타로 가고 있던 차였다.

믿을 수 없는 우연을 실감하지 못하며 기차에 올랐다. 묻고 싶었던 말들이 참 많았는데, 대뜸 튀어나온 질문은 “좋아?”였다. ‘탈조선’이, 유학생활이, 비엔나가, 미술이 좋냐는 질문이었다. 언니는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여러 친구도 사귀었고, 작업도 잘 되어가고, 벌써 몇 개의 전시도 해왔다고 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들판과 함께 언니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서울을 그리워했고, 그런 자신이 싫었다고 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떠난 서울인데도 말이다. 은근한 인종차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언어 등. 이제는 익숙해졌을 타국이지만, 혼자서 스스로를 챙겼을 길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니 내가 되려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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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 유학은 가지 말라고 종종 교수님은 말했다. 미술을 전공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손에 꼽힌다. 취업하자니 마땅한 직업도 없고, 작가의 길을 걷자니 불확실한 미래에 눈앞이 캄캄하다. 나 또한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자신이 없었다. ‘졸업 후’를 묻는 말들에 곧잘 ‘유학’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탈조선’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된 지금, 왠지 한국을 떠나기만 하면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백일몽이 거들기도 했고. 독일은 도피의 행선지 중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이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최소 5년은 걸리는 독일의 학제를 지나고 나면, 그 후에는 뭐가 남지?’, 막연함에 조금의 확신이라도 더하기 위해 지금 이곳, 카셀에 왔다.


미술을 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가 카셀이다. 카셀에서는 5년마다 미술행사 ‘카셀 도큐멘타’가 열린다. ‘언젠가 도큐멘타에 초청돼야지’라는 다짐을 품은 작가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은 지난 도큐멘타에 양혜규 등의 작가가 20년 만에 초청되었다. 그만큼 갖기 힘든 기회다.

카셀의 전시장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가장 좋은 답이다. 물론 여느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조각이나 회화를 생각한다면 실망이 클 수도 있다. 어째 카셀에는 아카이빙과 텍스트가 전부인 작업이 많다. 내가 지금 미술관에 온 건지 도서관에 있는 건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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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는 작업을 두고 ‘이빨까지 말라’고 배웠다. 작가는 작업으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명을 봐야만 이해가 된다면 ‘나쁜 작업’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덧붙인 글의 길고 짧음은 문제가 될 수 없다. 현실로부터 도망칠수록 나쁜 미술이 된다. 오히려 미술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딜수록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몇 개의 이미지와 문장으로 말하기엔 너무나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미술의 혓바닥이 길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상파의 그림처럼 한가하게 야외에서 풍경이나 그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고개를 돌리기엔 너무나 급박한 현실을 직면하기에 미술은 글자를 빌려 ‘읽히기’를 자처한다. 카셀의 전시장도 그렇다. 관객들은 가만히 서서 작업 옆에 붙어있는 종이 한 바닥 분량의 설명을 꼼꼼히 읽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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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은 애초부터 현대미술을 ‘퇴폐’라 지정한 나치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했다. 현실에 대한 지독한 고민이 카셀을 뒤받치는 셈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쟁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성소수자 등의 현실까지 짚어낸다. Lala Rukh의 작업은 아랍의 여성인권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crimes against women’이라는 이름 아래 신문기사를 콜라주하거나, WAF(Women’s Action Forum)의 포스터와 전단 등 페미니즘 운동과 관련된 인쇄물들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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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za Böttner의 작업의 설명에서는 ‘s/he’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8살의 나이에 전기사고로 두 팔을 잃은 그/그녀는 입과 발로 그림을 배우는 법을 배운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그/그녀는 미술과 함께 여성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전시장에서는 그/그녀의 이야기를 생애에 걸친 드로잉, 사진과 함께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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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Seidmann-Freud 또한 15살에 Martha에서 이름을 바꿨고, 때때로 남장을 했다는 설명이 쓰여있다. 동화책 작가인 톰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기도 하다. 동화책에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구별을 찾을 수 없다. 함께 생전의 사진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길고 긴 글들이 전시되어있다. 톰의 어린 시절 사진을 두고 ‘Martha(later Tom)’이라 덧붙인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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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Annie Sprinkle과 Beth Stephen였다. ‘radical feminist art’라고 설명된 이들의 작업은 마주하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온갖 ‘포르노 스타’들의 팬티들이 청동으로 박제되어있다. 낙태할 때 쓰이는 도구 사이로 성기를 보여주는 영상이 보이기도 한다. ‘Why whores are my heros?’(왜 창녀들이 나의 영웅인가?)이나 ‘101 uses for sex’(섹스를 위한 101가지)라는 글이 쓰여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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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업은 무너진 세계의 틈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장애인, 유색인종 등 가려져왔던 지대의 작업들이다. 이성의 변호 아래 혐오와 차별이 당연시되어왔다. 산성비에 무너져가는 신전처럼 서구의 이성중심의 신화도 점점 무너져간다.

이번 카셀의 주제는 ‘Learning from Athens’ (아테네로부터 배우기)다. 고대그리스는 이성중심주의, 민주주의, 인간중심주의의 뿌리다. 찬란한 서구문명을 되돌아보자는 의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성에 대한 맹신은 오히려 전쟁이라는 비이성을 낳았다. 그리스 발 최악의 경제위기, 그리스를 거쳐 넘어오는 난민의 포화, 이에 따라 점점 폐쇄적이고 극우적으로 향하는 유럽의 상황들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아테네로부터 배울 것은 찬란한 문명이 아니다. 현실의 모든 비극을 낳은 그 역사의 시작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미간을 좁힌 채 유심히 들여다본 관심만큼, 작가가 보여준 세계의 틈을 주시해야 한다. 작가는 결국 작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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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의 작업들은 너무나도 멋졌다. 그래서 슬펐다. 나는 이런 미술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토록 치열하고 면밀하게 세상을 고민할 자신이 없었다. 카셀행 기차에 오를 때 만났던 언니가 문득 떠올랐다. 아마 나는 그처럼 용기 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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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의 풀밭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작업이 있었다. 한 줄로만 갈 수 있는 길이 공중을 향해 전망대처럼 좁게 나 있었다. 대열에 합류해 기대에 차서 기다려보았다. 끝에 다 가보니 탁 트인 오랑주리 공원의 전망이 보인다. 그리고 난간 위 작은 철판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if you are looking for something, it is not here.’

카셀이 내게 어떤 답을 내려주길 바랐다. 미술과 미래에 대해 꼬리를 무는 고민이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기를 바랐다. 그런데 머리를 싸매던 모든 시간이 저 작업 덕분에 한 순간에 우스워졌다. 역시나 다시 원점이다. 그렇다고 갑갑하거나 막막하지는 않다. 오히려 말끔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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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도시인 베를린을 향한다. 새벽 5시에 버스에 올라탔다. 늘 그랬듯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높다. 비현실적으로 뭉개 뭉개 피어난 구름들 너머로 해가 뜬다. 한 폭의 회화에 가깝다. 카셀이 마지막으로 내게 선물을 주는 듯하다. 온 하늘을 물들이곤 떠오르는 해를 보며 5년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내가 그 때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올게. 너무나 멋져서 슬펐던 카셀 안녕.



*이 글은 <아는 동네>에 2017년 연재했던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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