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명상에 가깝다, 뮌스터
3월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낯 모를 풍경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개학과 개강 같은 것, 전학을 가는 것,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뀌는 것,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 등.
시작과 처음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생전 모를 날들이 어떤 얼굴로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도 그렇다. 그 도시가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기에 온몸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고백하건대, 사실 어디를 가도 첫날 만큼은 지겹도록 익숙한 서울이 그리웠다.
도시 전체가 내게 텃세를 부리는 걸까, 언제나 첫날은 공황이 날 휩쓸고 지나갔다. 일종의 신고식이자 환영인사였다. 불변의 징크스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구름 위 비행기에서 나를 다잡았다.
'분명 첫날은 공황과도 같을거야. 그래도 꾹 참고 나를 다독이며 도시와 얼굴을 트자.'
어김없이 이역만리의 땅은 내게 쌀쌀맞았다. 베를린 공항에서 버스표를 파는 직원은 분명 레이시스트였을 것이라 장담한다. ‘나는 너를 혐오한다’는 기세가 역력한 눈빛으로 나를 대하더니, 거스름돈을 받으며 손끝이 스치자 벌컥 성을 냈다. 독일 땅에 떨어진 지 한 시간이 채 안 됐을 때였다. 도시의 냉랭한 얼굴에 잠시 아득해졌다.
그렇게 온 신경이 곤두선 채로 뮌스터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뮌스터는 베를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작고 한적한 시골 도시다. 독일의 서쪽 끝과 가깝다. 이 작은 도시를 굳이 찾아간 이유는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때문이다. 10년이라니, 이 주기에서부터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의 속도가 느껴진다. 한국이었다면 10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에 무색하게, 1977년부터 시작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벌써 5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행사는 마을 전체가 전시장이다. 실내의 화이트큐브가 아닌 마을의 풍경을 전시장으로 삼았다. 푸르고 너른 풀밭, 건물보다도 키가 큰 거대한 나무들, 고요한 강이 전시장이다. 마을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공공미술’의 갈래로 묶인다. 사실 미술이 전공인 내게도 ‘공공미술’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 솔직히 공공미술이라 하면 ‘전시행정’, ‘예산낭비’ 등의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교수님 중 공공미술을 주로 작업하시는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공공미술은 대기업이 사옥 앞 부지에 ‘고급 취향’을 내세우는 것에 그친다며 지겹다는 표정을 보이셨다.
‘공공 미술’에 대한 불신은 뮌스터에도 없지는 않았다, 비록 50년 전 이야기지만. 당시 주민들도 헨리무어의 작업이 설치될 때 ‘조각 같지도 않은 조각’이라며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이때의 소동으로부터 뮌스터 조각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과연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표가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뮌스터를 미술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지금 그 조각 앞에는 거대한 트럭과 트레일러가 설치되어있다. 이래봬도 이번 행사를 위해 두 작가가 준비한 협업작품이다. 모르고 보면 대체 누가 미술관 앞에 이렇게 큰 트럭을 주차했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조각을 실어 나르는 듯한 모양이다. 트럭을 통해 일상과 조각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토록 반대가 심했던 조각 앞에 트럭을 설치함으로써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공간과 미술이 만난다는 건 무엇일까?
이렇듯 뮌스터의 ‘공공미술’은 공간과의 호흡을 놓치지 않는다. 놓이는 맥락까지도 작업 일부라고 생각하는 태도다. 이는 곧 현대미술이다. 어디에 놓여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면 좋은 작업이 아니다.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발생하고, 그 공간조차도 작업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은 마을을 거닐다 보면 반갑게 나타난다. 사실 지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지나치고 갈 때도 잦았다. 그만큼 공간과 잘 어우러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크 시대의 궁전에 설치되기도 하고, 주민들이 산책하는 숲에 놓이기도 하고, 수백 명의 대학생이 왔다 갔다 하는 캠퍼스 한복판에 걸리기도 한다.
이곳의 주민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작업을 마주치면 어떨까. 일상의 지대에 불시착한 미술을 만난다면 우선은 당황할 것 같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질 것이다. 작업이 어떤 의미이며, 작가는 왜 하필 이곳을 선택했을지 골똘히 생각해볼 것 같다.
공공미술이란 생각의 틈을 열어준다. 공백에 불과했던 공간에 약간의 변칙을 더한다. 이로써 무감한 일상 속에서 잠깐일지라도 다른 차원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뮌스터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강과 호수, 숲과 풀밭, 구름과 하늘이 전부인 동네. 눈을 돌리면 수평선이 아득한 풍경. 작게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늘 귀 언저리에 맴돌고, 숨을 죽이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저 자리를 지켰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나무가 태연하게 동네에 가득하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 폐부까지 선한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자연은 그 자체로 공백을 내어준다. 이곳은 어디에 미술이 놓여도 그럴듯하다.
호숫가를 거닐며 드문드문 작업을 만났다. 호수의 어귀에 설치된 나루터 모양의 구조물이 내게 생각지도 못한 위안을 주었다. 요르헤 파르도의 97년 작 ‘부두(Pier)’였다. 꽤나 강의 깊숙한 곳까지 연결된 나무판자들을 밟고 끝까지 걸어가 봤다. 막상 그곳에 서자 사방이 강물로 찰랑거렸다. 대충 자리를 털고 앉아보니 들리는 것은 강물이 흐르는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들. 결국은 나에게 집중한다. 물이 나를 향해 밀려 들어와 나로부터 흘러나갔다.
한국에서는 커피 한 잔을 마셔도 한 시간 뒤에 해야 할 것, 내일 할 것, 다음 주에, 그리고 그 다음 달에 할 것을 추려내곤 했다. 머릿속에 늘 글자들이 분주했다. 하지만 용하게도 강 한가운데서 가만히 물결을 바라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결 따라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보고 있자니 생각의 건더기들도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다. 여전히 내게 주어진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물살이 닿고 또 출발하는 이 ‘부두’에서 나 또한 많은 것들을 흘려 보내고 새로이 나아갈 힘을 얻는 듯했다.
잔뜩 곤두서있던 내게 왠지 이 도시가 다 잘될 거라는, 믿고 싶어지는 약속을 건네는 것 같았다. 결국, 나의 첫날 징크스는 강물이 금세 치유했다. 늘 처음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보자.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줄 테니.
*이 글은 <아는 동네>에 2017년 연재했던 글을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