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이 Oct 18. 2023

11. 내 어린 날의 초상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에곤 쉴레

내 어린 날의 초상



  은은하게 뻗어오는 햇빛, 새하얀 벽면과 중앙마다 위치한 원형소파,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오페라음악. 그리고 에곤 쉴레.

십여 년 전 비엔나의 미술관. 난 소파에 앉아 오페라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눈앞에 마주한 그림은 내가 그 시절 가장 동경했던 화가의 그림이었고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과 음악, 그리고 그림에 둘러싸여 난 새로운 차원의 살아있음을 느꼈다. 유럽여행을 가기 전 난 회사생활과 이직, 그리고 퇴사를 거치며 꽤나 스트레스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대학생활동안 목표했던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포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빨랐고 후회는 없다 하여도 다소 막연한 결정이었다. 그 막연함은 이십 대 중반이라는 내 길에 있어서 불안함을 동반했지만 그림 속 에곤쉴레가 담고 있던 젊은 날의 불안함이 그득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은 고요해졌다.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에곤 쉴레, 1912, 레오폴드 미술관


  가족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며 가끔씩 불안함이 나를 덮쳐올 때가 있다. 아기가 탄 등원차량이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차가 고장 난 건가 걱정을 하기도 하고 빠르게 달리는 택시 안에서 아이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것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두려움이자 걱정이며 일어나지 않을 사고에 대한 의미 없는 불안함임을 안다. 하지만 난 내 감정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던 얼마 전의 일을 겪으며 감정적 소동은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소용돌이임에 두려웠다.

  아이가 31개월에 접어들며 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기는 낮잠을 자기 위해 침대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극심히 싫어했고 그날은 나 또한 좋지 않은 몸상태와 피곤함에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 간신히 낮잠을 재웠지만 아기는 침대에 눕기 전까지 침대에 먼저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 머리를 잡아당기고 다리를 미는 등 꽤나 고된 체력소모를 거쳤다. 이후 몇 시간 뒤 이어진 밤잠에 있어서도 아기는 잠투정은 만만치 않았다. 잠을 거부하며 ‘우유를 가져다 달라’ ‘미디어를 보여달라’ ‘거실로 가야 한다’ 등의 의사표현으로 온갖 생떼를 부렸고 소리를 지르고 울며 매달리는 등 나와 남편에게 상당한 인내를 요구했다. 남편에게 함부로 하는 태도까지 보이자 난 결국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고함을 막지 못했다.


“그만해!! 너 이제 그만해!!”


  난 여태껏 살며 그렇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었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상당히 미성숙한 일이라 여겨왔고 차라리 슬픔을 통제하지 못할지언정 화는 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지내왔다. 심지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십여 년의 기간 동안에도 학생들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은 세네 번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내 아기에게 지른 고함에 비해선 훨씬 약한 정도였다. 난 내 밑바닥을 보이는 분노와 내 목청에서 터져 나온 소리에 놀라 경미하게 손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남편은 내가 내 안의 작은 괴물을 다시 가둘 때까지 딸아이를 안아 들어 거리를 두었고 딸도 놀랜 마음을 아빠의 품에서 진정시키는 듯했다. 분노라는 감정을 추스르며 대신 내 안에 밀려오는 또 다른 감정들은 죄책감, 미안함, 부끄러움,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불안함이었다.


  서로의 감정이 누그러진 후 나는 아기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는 사과를 전했고 아기 또한 다시 내 품에 안겨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장난을 치다가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잠이 들었다. 그 후 난 남편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며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가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았어.”라고 덤덤히 답했다. 난 남편의 대답에 조금은 안도감을 느꼈다. 내 행동에 대해 남편이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비난의 말도 하지 않았음에 안도했고 남편의 말처럼 딸아이를 안고 우리 사이를 진정시켜 줄 누군가가 있음에 안도했다.

  내가 내 분노에 이어 불안함을 느꼈던 이유는 일어나지 않을 사고에 대한 불안함이 아닌 나로 말미암아 실제 벌어질 수 있는 불안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내가 또다시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여 아기에게 또다시 토해낼지도 모를 분노, 내 딸아이가 겪을 순간의 두려움과 언젠가 반작용처럼 가지게 될 자식으로서의 원망 등 나와 딸아이 사이에 이 실패한 감정통제가 일으킬 파동에 불안한 것이었다. 나의 부서진 감정통제로 인해 내 아기가 누릴 행복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며 결국 지금의 행복이 불안한 것이었다.


  난 그날밤 검색포털에 ‘아기에게 화내지 않기’ ‘화내지 않는 육아’ 등을 검색했고 한 달 여가 지난 지금도 아기의 분노에 똑같이 분노로 맞서지 않기 위해 내 태도를 고민하곤 한다. 그리고 불안함이 고요해졌던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에곤쉴레의 초상을 마주했을 때 난 나의 살아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가.

결국 나 자신과 가족의 존재, 주변의 존재에 감사하고 그 본질적인 행복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는 것. 내가 살아있고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딸의 손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둘 사이를 지켜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 그것이 고요함의 중심이었다.

  에곤쉴레의 불안이 서린 눈동자를 담은 자화상의 역설적인 아름다움과 미술관에 가득히 뿌려졌던 그 햇살, 귓가에 전해진 황홀한 음악만큼이나 내 불안함을 잠재울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내가 가진 것에 소소히 감사하며 내 태도를 다듬고 지혜롭게 내 분노와 불안함을 가라앉힐 고요함의 힘을 기르는 것.


내 어린 날의 초상이 나의 고요함을 지켜주듯

나 또한 내 딸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함을 알기에

이전 10화 10. 피어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