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이 Apr 05. 2023

7. 루이스의 집처럼

[모드 루이스의 집]

루이스의 집처럼




  무언가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애착 자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계속 보고 만지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행위를 이어가기 위해 삶을 버틸 수 있다. 영화 “내 사랑”을 보면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루이스가 협소한 집안에서 여윈 손가락에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린다. 식탁 위에 핀 색동의 앙증맞은 꽃들과 벽에 날아다니는 새들, 창문에 수 놓인 나무들과 잔잔한 물결. 거의 움직일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비춘 그녀의 얼굴은 눈이 부시게 행복으로 충만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찬 집안에서 그림에 대한 애착을 원동력 삼아 작은 행복에도 감사해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애착 안에서도 싹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드 루이스의 집>, 모드 루이스 갤러리

  딸아이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여전히 내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이전처럼 머리카락 입에 물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뽑는 등의 행동은 거의 하지 않지만 여전히 자주 하는 행동은 내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엄마 머리카락을.." 


길가나 엘레베이터, 어린이집 문앞 등등, 내가 아기를 안고있을 때 그 모습을 본 분들에게 하도 많이 듣다보니 이젠 '머리카락에 애착이 있어요' 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입버릇이 된 것만 같을 정도다. 딸아이를 안으면 딸은 손을 뻗어 하나로 묶은 내 머리카락을 안전 손잡이 마냥 쥐고 있다. 타인이 지나가면서 잡지말라는 듯한 말을 하면 더욱 세게 쥔다. 잠이 들 때는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을 매만지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한다. 이따금 새벽에 뒤척일 때조차 내 머리카락을 더듬으며 존재를 확인 후 손에 쥐고 다시 잠든다. 

  이러한 머리카락 애착은 아기가 무언가를 쥘 수 있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딸아이가 누워있기만 하던 어린 아기시절, 내가 머리카락으로 아기를 간지럽히고 장난을 쳤을 때 무척 자지러지게 웃곤 했었는데 아마도 아기는 이미 그때부터 내 머리카락을 나와 자신의 연결고리 중 하나로 포착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 머리카락 애착은 때론 삭발을 해야 하나 터무니없는 고민을 할 정도로 괴롭기도 했다.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마주하면 특히 더 그랬다. 가장 힘든 건 밤잠을 재울 때였는데, 한창때는 잠들기 직전까지 머리카락을 끌어당겨 입에 물고 잠투정을 하기에 때로 머리카락이 통째로 뽑혀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머리카락 애착을 덤덤히 여기려하는 것은 나름 아기가 돌이 되고 두 돌이 되면서 머리카락에 하던 행동들이 하나둘씩 줄어들기도 했고 그 행동이 아기가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 나의 엄마의 귀를 만지곤 했다는 애착의 행동처럼 말이다. 나의 애착 행동은 동생이 생기면서 더욱 두드러졌기에 동생이라는 존재를 넘어서 엄마와 나의 일체감을 귓불을 만지며 확인했던 듯싶다. 애착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집착했던 모양이다. 뱃속에서는 탯줄로 연결되고 태어난 직후에는 수유와 끊임없이 안겨있고자 하는 행동들로 애착을 대신하지만 이후엔 엄마와의 일체감, 그 연결고리를 찾고 그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내가 그랬듯 내 아기의 방식이기도 했다. 살면서 무언가에게 이토록 애착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일상의 즐거움과 소소한 재미, 우리가 사랑하는 그 수많은 것들 중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가 우리 인생에서 애착의 가장 큰 존재였을 것이다.


  내가 아기에게 “사랑해”라고 얘기하면 아기는 나의 머리카락을 입에 물며 귀엽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그 행동에서 사랑을 느낀다. 기저귀를 갈아줄 땐 작은 양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즐겁게 조물거리며 기저귀를 다 입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 행동에서 또한 사랑을 느낀다. 목욕 후 타월에 감싸 안아주면 아기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빈다. 그 행동에서도 나는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아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 아기도 역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아기의 사랑이라 느낀다.

  애착인형과는 달리 머리카락 애착은 이내 쌍방형 애정표현이 되어 잠깐의 고통도 사이사이 파고들었던 짜증이라는 감정도 모두 순식간에 녹여버린다. 아기의 애착에서 나는 사랑을 받고 느끼고 다시 그것을 표현해 준다. 루이스가 자신의 집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편과 집, 그녀의 삶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 것처럼 나는 아기의 애착과 사랑의 행동들이 집에 묻어있음을 안다. 그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기를 닮은 새, 아기만큼 어여쁜 꽃, 아기처럼 사랑스러운 고양이 마냥 집 여기저기에 몽실몽실하게 자리 잡아 이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고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는 이 머리카락 애착도 잠잠하게 사라지고 아기가 다른 것들에 더 큰 애착이 생길 무렵 이따금씩 아기의 손길이 아쉬워지지않을까, 오히려 내가 이 애착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애착(愛着)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좋아하여서 집착함.


이전 06화 6. 눈이 오지 않은 날을 더 사랑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