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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Oct 08. 2019

비 오는 날에 뿌리는 향수

사소하지만 '좋은 날들' 보내기

 

 언젠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향수 리뷰 글을 봤다. 


 원래 향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어쩌다 들어간 그 리뷰글은, 평범한 리뷰 글이 아니었다. 향수를 첫 향, 중간 향, 잔향으로 깔끔하게 분류하는 것을 기본으로, 나처럼 향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그 향을 사람에 비유하여 짧은 스토리로 묘사한 리뷰글이었다. 


 예컨대, 세련된 향(아직도 향을 추상적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는 필자를 용서해주길)을 '수트를 쫙 빼입은, 젊고 능력있는 스타트업 CEO'로 묘사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 완전 쏙쏙 들어오잖아?' 평소엔 사치품인 향수엔 전혀 눈길도 가지 않았던 나였다.



  그 시리즈(?)를 쭉 읽고 있자니 향수를 사지 않을 수 없었고(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그 중 물방울 냄새가 난다는 한 향수에 꽂히고 말았다. 비 오는 날에 뿌리면 특유의 물냄새로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담없이 산뜻한 향을 은은하게 유지시켜준다는 향수였다. 비 오는 날, 내부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는건 좋아하지만 우산 쓰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 맡게 되는 그 꿉꿉한 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지체없이 인터넷으로 그 향수를 구매하고 말았다. 


 배송도착 예상 요일은 한 주 뒤인 월요일. 그 때부터 얼마나 월요일이 기다려지던지. 흔히 말하는 월요병으로,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필자였지만 그 한 주만큼은 월요일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 같다. 내가 월요일을 기다리다니...기묘한 일이었다. 



 마침내 월요일이 되었고 드디어 향수가 도착했다. 반투명한 푸른병에 향수가 찰랑찰랑 담겨 있었는데, 사실 별 거 아닌 향수였지만 매일매일 기다리다보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기다린 향수를 그냥 방 안에서 뿌려볼 수는 없는 법. 그 리뷰글에 설명된 것처럼, 나는 이 향수를 비 오는 날에 뿌리기로 마음 먹었다.




 좋은 날과 싫은 날의 기준이 있었나?


 고리타분했던 월요일에 이렇게 설레하고, 싫어했던 비를 이렇게 기다리다니...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하루하루, 한 주 한 주가 이렇게나 바뀔 수 있구나. 평범한 일상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서서 행복한 일이 알아서 다가오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일상을 중단하고 엄청나게 새로운 일을 해야만 설렐 수 있다고, 우리는 막연히 생각하곤 한다. 


 물론 익사이팅한 일을 벌릴 경우 잠깐은 즐거울 수 있겠다. 하지만 원래 삶의 터전이었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즐거움은 오히려 반감될 수도 있음을, 매번 경험해왔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겪는 여행 후유증 등은 거의 그렇게 비롯되지 않나. 나도 모르게 일상의 평범한 날들은 '그리 좋지 않은 날',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재밌는 일을 할 때를 '좋은 날'로 막연히 나눠온 건 아닌지 돌아봤다.


 좋은 날과 싫은 날의 기준은 결국 그 날을 바라보는 나의 차이지 않을까. 어차피 하루 하루는 똑같이 흘러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복된 일을 하며 삶을 영위한다. 매일 일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 일상 속에서 작은 설렘을 만들고 사소하지만 '좋은 하루들'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사람'과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 오는 날에 향수를 뿌리다


 아직도 비 오는 날이면 그 향수를 뿌린다. 아니, 사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그 향수를 뿌린다. 애초에 향수의 종류 자체도 많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그 향수에 비가 오고, 오지 않음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아, 나가기 싫다' 보다는 '그 향수 뿌리고 나가야겠네'를 생각하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속에서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은은한 향이 어디선가 솔솔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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