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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Sep 26. 2019

새로운 카페에서 최애 게임을 지우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이루는 나의 꿈


 집 근처에 새로운 카페가 생긴 지 좀 됐다.


 워낙 집돌이에, 외출을 하면 아예 동네 밖으로 나가는지라 집 근처 카페를 갈 일이 좀처럼 없었다. 그래도 집에 오며 가며 본 그 카페의 모습은 새로워 보이려고 아등바등하기보다 기존 건물의 멋을 담담하게 살려내고 있어,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아무런 일정도, 약속도 없는 날, 점심을 먹고 티비를 보며 뒹굴 거리다가 마침 그 카페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며칠째 집에서 핸드폰 게임,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자괴감에 빠져 잠을 자던 일상이 반복되고 있어 약간의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 오늘은 뭐라도 해보자.


겨우겨우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고 후다닥 씻고 집을 나섰다.


 카페까지 걸어가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한낮 시간대라 거리에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거리에 나온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지긴 했으나 나는 그 한적함이 마음에 들었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보지 못했던 개울가를 지나며(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주택단지에 산다)  놀러 가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주문할 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카페 사장님의 설렘과 기대를 느낄 수 있고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아 여유로운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마치 내가 새로움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영업을 계속하실 수 있을 정도의 손님만 있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도 늘 갖는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열었다. 주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자리까지 전해주시는 사장님(혹은 직원)의 친절이 좋다. 이 카페는 의외로 평범한 배치로 공간을 꾸며놨는데 곳곳에 요즘 트렌드를 담고 있는 '인스타 스팟'을 조성해 나름 감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황색 간접 조명은 언제 봐도 포근하다.



 여기 오기 전에 마음먹은 게 있다.


 사실 샤워하면서 마음먹었다. 그건 바로 내가 가장 즐겨하고 오래 하던 모바일 게임 두 개를 지우는 것. 그게 뭐 대수라고 마음까지 먹냐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겐 큰 결심이었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누워있거나 핸드폰으로 게임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동시에 할 수도 있음), 이게 잠깐 한 두 판만 하려고 켜도 지게 되면 이길 때까지 계속하는 등 어느새 훌쩍 30분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루에 몇 번씩 이러니 합치면 꽤 많은 시간을 모바일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처음 할 때는 스트레스 풀려고 시작했는데 지면 스트레스가 쌓이니, 시간도 날리고 스트레스도 받고 뭐 하나 좋은 게 없었다.


 오래 하던 게임을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나름 게임 속에서 쌓은 실력(시간과 비례한다)도 아까웠고 스트레스받는다 했지만 이겼을 때 그만큼 재밌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호흡으로 짬짬이 할 수 있어 쏠쏠하기도 했고... 솔직히 마음만 잘 먹어도 적당히 하면서 할 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브롤스타즈: 나보다 높은 사람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길. 한 수 배우러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게임을 지우려고 하는 이유. 나는 종종 사소한 것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애써 무시해왔다. 원래 유튜브를 보지 않았다. 처음 시작하지를 않으니 궁금하지도 않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자료조사 차원에서 검색해 보곤 했다. 하지만 심심해 들어가본 영상을 한 번 보기 시작하니 관련 영상을 보고, 자동 재생 영상을 보고, 그러다 구독하고, 비슷한 유튜버를 자동 추천받아 또 구독하고... 처음 가볍게 시작한 일은 어느새 내 일상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내가 넷플릭스를 하지 않는 이유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한 번 하면 정점에 오르거나(그 게임 제일 잘한다 라는 소리 들을 때까지 한다) 엔딩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새로운 게임을 하는 걸 주저한다. 분명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끝까지 할게 분명하기 때문에.


한 판만 더하고 지울게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건전한 취미가 되리라 생각했던 이번 게임도 나도 모르는 새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주변 사람들(특히 가족)이 "게임 좀 그만해"라고 이야기할 때,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만약에 게임할 시간에 책을 읽었다면? 글을 썼다면? 아니 차라리 눈을 감고 여유롭게 쉼을 가졌다면? 분명 당장에 그 차이는 미미하겠지만, 우리는 항상 '앞으로'를 준비해야 하는 존재들 아닌가. 지금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짧은 즐거움은 짧게 끝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가... 나중에 보자(?)



 우리는 각자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 대단한 고난이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분명 우리는 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꿈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이 클수록 엄청난 고난이 닥치리라 생각한다. 그 험난한 고난을 견딜 각오를 하고 준비하리라 다짐하지만, 정작 그 꿈을 무너뜨리는 건 당장의 사소한 몇 가지이지 않을까? 10분이 망가지면 1시간을 망치고, 1시간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하루를 날린다. 그 몇몇 하루가 모여 한 주, 한 달이 된다. 더군다나 그 망가진 시간 속에서 새롭게 다짐하리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 생긴 카페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키고, '대단한 결심'으로 애증의 게임을 지우고 나니 시원섭섭했다. 하지만 후련한 마음속 어딘가에서 '잘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용기도 나는 것 같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해나가고 싶은 다짐도 생긴다. 그래, 비워야지만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작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기에, 사소해 보이지만 나를 붙잡고 있던 '게임'을 지웠다.



 카페를 나서면서 찝찝한 어제의 기분을 '청산'했다. 계속해서 나를 갉아먹던 일종의 패배감이었다.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에 대한 패배감, 내일도 마찬가지겠지 라는 우울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소한 일을 함으로써 이런 대단한 기분을 느끼다니. 내가 게임을 해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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