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감성 Nov 22. 2019

클라이밍에서 문제를 푼다는 것.

"조금만 더 쉬고 하지 그래?"

요즘 한창 클라이밍에 빠져 있다. 


동네에 작은 실내 암벽장이 새로 오픈했는데, ‘운동 좀 하자’는 옆집 동생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등록해버렸다. 이벤트가로 3개월. 


 얼떨결에 시작한 클라이밍은 내 고운 손에 자잘 자잘한 굳은 살을 선사했다. 곱게 자랐는데…그리고 힘내자고 시작한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운 빠지는 하루를 만들어줬다. 오전에 암벽장을 다녀오면 과장 조금 보태서 주스병 하나 따기도 벅찼다. 물론 전체적인 체력은 올라갔겠다만…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내가 하는 단계보다 훨씬 어려운 단계를 클리어해내는 어린아이,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며 벽을 잡고, 또 잡았다. 


 사실 실내 암벽장에 1시간 있는다고 치면, 매달려 있는 시간은 길어야 20~30분 정도다. 한 단계를 클리어하는 시간은 3분에서 5분 사이 정도. 그렇게 한 번 매달려 있다 내려오면 거진 10분은 쉬어 줘야 한다. 클라이밍을 하지 않는 혹자는 그게 무슨 운동이 되냐고 말할 수 있겠다마는, 충분히 휴식을 취해주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커녕 같은 단계도 클리어하기 어렵다. 한정된 체력은 매달린 시간만큼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홀드(인공벽에서 울퉁불퉁 튀어나온 부분)에서 손을 떼야만 소진은 멈추고, 회복이 시작된다.



 클라이밍에는 ‘문제를 푼다’는 표현이 있다. 


1에서부터 시작해 정해진 홀드만 붙잡고 경로를 파악해 TOP까지 가는 것을 ‘문제를 푼다’라고 한다.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실패한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떻게 손을 두어야 하는지, 발은 어디를 딛어야 하는지, 또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초보자인 나는 그런 것도 모른 채, 우선 1을 붙잡고 다음 길을 찾았다. 홀드를 잡은 채 다음 번호를 찾고 어디를 딛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필에 빠르게 힘이 풀린다. 그러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한 채 벽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같은 지점에서 반복해서 떨어진 후에야 나는 주저앉아 왜 떨어졌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 방에 풀리는 문제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 세상 문제들의 난이도는 easy부터 hard까지 골고루 산재해 있다. 그런 문제들 앞에서 나는 줄곧 1부터 잡고 매달리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눈에 보여 마음이 급해졌는지, 문제를 분석하기는 커녕 바들바들 홀드에 매달려 이리저리 다음 번호만 찾고 있는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1분만 더 쉬면 충분히 풀어낼 문제도 조급해진 마음 탓에 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삶에서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매달리고, 남은 힘을 짜내어 다음 단계로 향해야 하는, 그런 고난들이 있다면 많아봐야 얼마나 있을까. 어떻게든 매달려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요즈음에, 오히려 잘 쉬고, 쉬면서 다음 길을 찾고, 길을 찾으며 힘을 쏟아야 할 곳을 예상하고 휴식하며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온 힘을 짜내야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기에. 


 그제는 실내 암벽장에 일찍 도착해 다른 회원들 없이 나와 센터장님만 있었는데, 혼자 자유롭게 암벽장을 쓸 수 있어 여러 번 올랐다 내렸다 했다. 보통 30~40개 홀드를 한 단계로, 5번 정도 잡으면 그 날 운동을 마치곤 했는데 이 날은 힘이 불쑥불쑥 솟아 4번 정도 즈음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얼른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 10분 정도 쉰 후, 손에 초크가루를 묻히고 그 문제의 ‘1’을 잡으려는 순간, 카운터에서 잠자코 나를 보고 있던 센터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쉬고 하지 그래?






@글쓰는 차감성





함께 소통해요. 
@글쓰는 차감성 (https://www.instagram.com/cha_gamsung_/)
우리의 감성을 나눠요.
@소셜 살롱, 감성와이파이 대표 (https://gamsungwifi.com/
한국영화를 소개해요.
@한국영화박물관 도슨트 (https://www.koreafilm.or.kr/museum/main)
매거진의 이전글 난생 처음 기부행사에 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