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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Dec 22. 2019

시속 30km 미만 서행

우리 동네 산책길 이야기

가끔, 하고 있는 모든 일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아주 좋은 동기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 시기가 되면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붕붕 떠다니기만 한다. 아예 손을 놓을 수 있는 일이란 나에게 없기에, 잡히지 않는 일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아주 ‘불편한 쉼’을 갖는다.


 그럴 땐 보통 할 일을 들고 카페를 가곤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무관심한 약간의 시선들은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하지만 정말 속이 답답할 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산책을 나간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사한 집은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동네에 있었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여유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따금 밭일을 하는 풍경만 보이는 그런 신기한(?) 동네였다. 버스가 30분에 한 대 다니지만 차를 타고 나가면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가가 있는, 그런 애매한 위치였다.


 그렇기에 내가 걷던 산책길 역시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봄엔 봄냄새가 났고 가을엔 가을냄새가 났다. 여름엔 뜨거웠으며 겨울엔 아주 차가웠다. 나는 그 시골길을 걸으며 생각을 덜어내고, 또 채워갔다.


 산책길은 인적이 드문 곳이긴 해도 엄연한 찻길이었다. 그러니깐 차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흔한 시골의 1차선 길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길의 초입에는 ‘시속 30km 미만 서행’ 표지판이 우뚝 서있었는데 나는 항상 그 표지판을 보며 산책을 시작했다.



‘30’. 차로 따지면 아주 느린 속도지


 30이라는 숫자를 되뇌며 길을 걷다 보면 내 삶의 속도는 지금 몇 km/h 쯤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적당한 속도일까. 혹시 너무 과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주행이든, 삶이든 도로에 따라 천천히 달려야 할 때가 있고, 빠르게 달려도 될 때가 있을 텐데, 나는 항상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컸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다시피, 퍼지기 일쑤였다.




 최근 조용하던 집 주변이 공사 소리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상권의 소문을 듣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식당들이 집 앞에 들어섰다. 산책길도 무사하지 못했다. 큰 도로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공사차량들이 지나다니며 먼지를 내뿜었다.


 이제는 산책길이라 부를 수 없는 그 길에는 아직도 ‘30’ 표지판이 외롭게 서서 서행을 말하고 있다. 결국 그 표지판도 자취를 감추겠지만. 산책길은 찾으면 또 찾을 수 있겠지만,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내게 천천히 걸으라고 말해주는 무뚝뚝한 친구 하나가 멀리 떠나는 듯하여, 나는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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