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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Jan 15. 2020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어바웃 타임의 OST, 칸초네 'Il Mondo'를 듣다가

 최고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얼마 전 영화 ‘조커’도 가까이서 본 인생의 비극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보태어 내 인생만 보더라도 걱정 없이 즐겁고 희망찬 순간보다는 사소하게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들이 더 많으니…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채플린의 말을 듣지 않아도 ‘가까이서 본 인생은 비극적이다’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멀리서 보았을 때, 혹은 한참 걸어온 뒤,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희극을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경이라고 소문난 산을 오르더라도 눈 앞의 오르막길만 보면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아오, 언제까지 올라가야 해.’ 하지만 중간중간 저 멀리 풍경도 보고, 지도도 보면서 ‘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풍경이 장난 아니네’ 해야 끝까지 오를 수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인생의 비극은 비극 그 자체라기보다 희극 속 위기의 한 순간 정도로 인식될 수 있다.


 여행을 다녀와도 마찬가지다. 사실 좋다고 소문난 장소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보다는 숙소를 찾아 헤맸던 일, 투어 버스를 놓칠 뻔한 일, 현지인에게 된통 사기를 당한 일들이, 다녀와서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당시엔 처참한 비극일지 몰라도, 다녀온 후 친구들끼리 다시 모이면 그 이야기가 먼저 나와버린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 버린다. 참 희극적이다.



당신의 인생이 비극처럼 느껴지는가?

그런 당신에게 감히 멀리 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멀리 볼만큼, 뒤를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우리에겐 없었으니깐. 대신, 지금 우리의 이 순간을 잠시 ‘희극’처럼 느껴지게 하는 노래 하나를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다. 바로 칸초네 ‘Il Mondo’ 다.


https://www.youtube.com/watch?v=D_wfB4-_798


No, Stanotte amore non ho piu pensato ha te

아니, 오늘 밤 당신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았어요

Ho aperto gli occhi per guardare intorno a me 눈을 열고, 내 주위를 돌아봤어요.

E intorno ha me 내 주변을요.

Girava il mondo come sempre 세상은 언제나처럼 돌고 있었죠

Gira il mondo gira 돌아요, 세상은 돌아요

Nello spazio senza fine 공간에서 끝이 없이

Con glia mori appena nati 이제 막 태어난 사랑과 함께

Con glia mori gia finite 이제 막 끝난 사랑과 함께

Con la gioia e col dolore 기쁨과 고통과 함께

Della gente come me 나와 같은 사람들의

Un mondo 한 세상

Soltanto adesso io ti guardo 이제야 너를 바라보고

Nel tuo silenzio io mi perdo 고요 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E sono niente accanto a te 나는 네 옆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Il mondo 그 세상

Non si a fermato mai un momento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어요

La note insegue sempre il giorno 밤은 낮 뒤에 항상 뒤따르죠

Ed il giorno verra 그리고 그 날은 올 거예요

Il mondo 그 세상

Non si a fermato mai un momento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어요

La note insegue sempre il giorno 밤은 낮 뒤에 항상 뒤따르죠

Ed il giorno verra 그리고 그 날은 올 거예요



 가사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막무가내로 힘내라고 하지도 않는다. 사실 힘든데 힘내라고 하는 것만큼 싫은 소리가 없다. Il Mondo의 가사는 음악 없이 읽어보면 따뜻하기보다, 오히려 그 무념무상함에 상처 입기 쉽다. 내가 기쁘던, 슬프던 세상은 어제처럼 오늘처럼 내일처럼 똑같이 돌아간다니… 위로해주기는커녕 기다려주지도 않는단다. 그리곤 말한다. ‘네 일의 기쁨과 아픔은 결국 네 일이야.’


 그런데 그래서일까?

이상하게 마음에 평화가 온다. 음악과 함께 들어보면 더더욱 그렇다. 묘 한전주가 흐르다가 No~라는 보컬과 함께 클래식 기타의 소리가 ‘스르릉’ 울리는데 이게 참… 가슴에 미묘한 진동을 준다. 그리고 말을 건네듯 노래한다. ‘나도 가슴 아픈 일을 겪은 후에 주변을 돌아봤더니, 참… 세상은 똑같이 돌고 있더라.’

‘그리고 그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며 감정을 고조시킨 후, ‘Un Mondo 세상!’ 이라며 응어리를 토해낸다. 클래식한 칸초네의 반주와 함께 감정을 이어 나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6D4ANb4xjGc


 무념무상했던 가사와는 다르게 힘차게 이어지는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아까 읽었던 그 가사가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세상은 네가 중심이 아니야’라는 말이 오히려 ‘그러니깐 넌 지금 네 삶에 충실하면 돼’로 느껴진다. 지금 내 기분이 우울하다 보면 세상 모든 일이 우울하고, 지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암울하게 흘러갈 것만 같지만 사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중요한 건 그 기쁨과 슬픔을 발견하고 있는 지금의 ‘나’다.

무심하게만 느껴졌던 가사가 따뜻하게 느껴진 이유다. 결국 이 노래도 말한다. ‘Ed il giorno verra: 그리고 그 날은 올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이 정확히 어떤 날일지는 모른다. 지금의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날일 수도, 몇 안 되는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다. 어차피 모른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날을 맞는 ‘나’의 마음가짐 아닐까. 비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서 작은 선물을 발견하는 것도 나고, 그 선물을 열어보는 것도 나다.


https://www.youtube.com/watch?v=EnlDGI_F1Ys


내가 생각한 이 노래의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바로 어바웃 타임의 결혼식 장면. 팀과 메리의 결혼식, 신부 입장곡으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진다. 레이첼 맥아담스의 아름다운 모습도 한몫했지만, 이 노래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결혼식 뒤풀이 장면이다. 흔히 결혼식을 생각하면 기분 좋게 화창한 날씨를 생각하지만, 이들의 결혼식 뒤풀이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친다. 우산이 날아가고, 폭우에 드레스와 정장은 홀딱 젖고, 뒤풀이가 열리는 연회장 텐트는 바람에 날아가고. 하지만 누구 하나 욕하거나 울상을 짓고 있지 않는다. 그마저도 행복하다는 것처럼.


옷이 젖으면 어때, 텐트가 날아가면 어때. 우린 지금도 함께 있고 내일도 함께 있을 거니깐, 행복하니깐 그만이야.



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장면에 비를 내리게 했을까. 그리고 왜 이 장면에 이 음악을 썼을까. 세상은 언제나처럼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든지 간에 비를 내린다. 중요한 건, 그렇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그걸 맞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다시. 당신의 인생이 비극처럼 느껴지는가? 맞다, 비극이다. 그런데 잠시만 그 비극적인 일을 내려놓고 이 노래를 틀어보라. 가사의 뜻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그냥 눈을 감고 음악을 틀고, 마음을 가라앉혀 보라. 사실 생각해보면 그 비극적인 일 속에 묻혀 있어 그렇지, 밖으로 나와 보면 그리 별 거 아닌 경우가 많다. 이 노래는 당신을 비극적인 일 밖으로 꺼내어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Il M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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