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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Mar 25. 2020

EP02. 제대로 쉴 수 있는 휴양지

가장 안전하고 저렴한 여행지, 내 방

 여행 후유증


 신나게 여행을 즐기고 집에 돌아가면 생기는 후유증이라고 한다. 쉬려고 갔던 여행인데 오히려 후유증이 생겨 버리다니. 단어만으로도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니 고생 좀 한 것 같다. 어떤 일정으로 해야 비행기표가 가장 쌀까, 반나절 예매사이트만 봤던 기억부터 시작해서 입국장을 나오면서 맞이한 호객꾼들, 늦은 밤 숙소를 찾지 못해 기껏 봐둔 럭셔리 침대에 누워 보지도 못했던 기억들. 투어를 하나 신청하더라도 덤태기를 씌우는 건 아닌지 치열한 눈싸움을 해야 했고, 예산분배에 실패해 날이 갈수록 저녁 메뉴가 초라해지는 안타까움까지. 다행히 여행 후유증을 이겨내면 미화된(?) 기억들이 내 일상의 유일한 위안거리로 작용하지만 분명 아쉬운 건 사실이다.



 물론 여행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편안하기만 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꾸불꾸불한 길 속에서 숙소를 찾아가다 예상치 못한 멋진 풍경을 본 경험은 분명 평생의 추억으로 남는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일상과는 다른 선택들을 하며 진짜 ‘나’를 찾아나가는 경험을, 우리는 여행에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여행이 아닌, 진짜 ‘제대로’ 쉴 수 있는 여행이다. 

지난 2주간, 우리는 돈과 시간을 아끼며 내 방 여행을 떠났고 여행지의 살아 숨쉬는 역사를 탐방하고 왔다. 새로운 시각은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해주지만 과하면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내 방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행지인 내 방에서 지친 나를 위해 푹 쉬는 일정을 잡아보았다. 



 가슴 속까지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창문 앞에 선다. 

 창문 앞에 서면 조그만 마당이 보이는데, 베르사유 궁전의 광활한 정원은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달라지는 잔디색, 이따금씩 배를 보이고 누워있는 고양이들, 그들을 비추는 포근한 햇살을 맞이하다 보면 잔잔하게 가슴이 떨려온다. 이 곳은 사계절, 매일매일이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고 하니 낙엽이 질 때 즈음 다시 한 번 이 곳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당욕(마당;浴)을 마치고 나면 드넓게 펼쳐져 있는 침대 위로 풍덩 뛰어든다. 

 마당욕과는 또 다른 설렘. 여행지인 만큼 핸드폰으로 딴 걸 보기보다는 좋아하는 음악정도만 틀어두고, 평소에는 읽지 않는 책을 한 번 펼쳐본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도 좋지만 오늘은 언제든지 책장을 덮어도 찝찝하지 않은 에세이책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과 가벼운 책, 뒹굴거릴 수 있는 침대. 최고의 휴양이다. 



따갑지 않은 햇살…

살랑살랑 부는 바람…

잔잔한 책의 문구들…

.

.

.

.

.

 앗, 벌써 시간이…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의 일정은 타이트하지 않으니깐. 아니, 정해진 게 없으니깐. 여행에서조차 계획대로, 시간 단위로 움직이려 했던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이 곳은 그럴 필요가 없는 곳, 밤이 되어도 내일 뜰 태양에 초조할 필요가 없는 곳, 뭘해도 나를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곳, 그리하여 나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곳. 평화와 안녕을 주는 최고의 휴양지인 이 곳은 바로 나만의 케렌시아, '내 방'이다. 



달다 달어, 내 방 여행 꿀Tip#3


1. 좋아하는 음악과 책을 미리 준비해둘 것

2. 상쾌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더 감명깊어짐!

3. 사계절 모든 날씨가 매력있지만 잔잔한 햇살이 비추는 날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음!

4. 당일 일정은 여유롭게 잡을 것!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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