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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Feb 21. 2021

Dr.MBTI

매번 달라지는 나의 MBTI 결과

[도시우화]

Dr. MBTI




"자, 감성 씨 어서오세요. 어떻게 찾아오셨죠?"

박사는 인자하게 웃으며 감성 씨를 맞았다. 박사의 맞은편 의자에 앉은 감성씨는 박사의 친절한 인사에도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으나 그의 기우겠거니 생각하고 대답했다.

"뭐...친구들이 많이 추천하더라고요. 저도 아직 저를 잘 모르겠고..."

"잘 오셨습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완벽하게 정의 내려줄 거예요."



박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감성 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책상 한 구석에는 작은 모래시계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감성 씨의 시선이 그곳에 향하자 박사는 빠른 눈치로 모래시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감성씨가 하는 검사는 아주 간단한 검사예요. 하지만 아주 직관적으로 임해야 하죠. 고민을 많이 하다 보면 감성 씨 다운 판단이 아니라 꾸며낸 답변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박사는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래서, 이 모래시계가 필요한 겁니다. 짧은 시간 내에 대답해야 직관적인 대답이 나오거든요. 아, 혹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직하게 답변해보세요. 가능하면 '보통'이다, 라는 답변은 피하시고요."

감성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어려워 하나요?

아뇨. 자기소개쯤이야 어렵지 않아요. 아, 음... 생각해보니 다수가 있는 곳에서 먼저 저를 소개하는 건 조금 어려워요. 


명확하게 부탁해요.

아, 네. 죄송합니다. 그러니깐... 예를 들면, 파티 같은 곳? 이미 친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저를 알려야 하는? 그런 자리는 어렵다는 거예요. 제가 낯을 조금 가려서...


그러면 어려워한다는 거에 동의하는 거죠?

아니, 막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게 일대일로 이야기하거나 자리에 나와서 저를 소개해야 할 때는 잘 이야기해요. 그러니깐 상황이랑 자리에 따라 다른 거죠.


그러면 비동의한다는 거네요?

그걸 또 그렇다고 이야기하기엔...


자, 감성 씨 시간이 없으니 우선 동의 쪽에 가깝게 체크를 해보죠.

아, 네...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당화시켜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나요?

저는 비교적 남 시선에 개의치 않고 제 비전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을 타인에게 납득시켜야 할 이유는 없죠. 다만... 아무래도 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는 생각해요. 제 상황으로 보면, 취준을 하고 있어야 할 나이에 창업이니 프리랜서니 여기저기 기웃기웃하고 있는 게, 저는 괜찮은데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저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긴 하죠.


그래서... 감성 씨는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는 정당화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네요?

그렇죠. 제가 여러 사람, 혹은 중요한 인연들 앞에서 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꼭 이 꿈을 이루고 싶다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고.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 실제로 죽었다 깨어났으니...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도 아까울 시간에 나를 속이며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이 제가 게을러졌을 때, 저를 붙잡아 줘요. 


감성 씨, 제가 드리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렇게 까지 깊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꿈이 현실 세계와 사건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나요?

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따로 설명을 드릴 수는 없어요.

그러니깐... 꿈이라는 게 잘 때 꾸는 꿈은 아니겠죠? 뭐... 제가 이루고 싶은 걸 꿈이라고 생각해볼게요. 음... 저는 제 꿈이 때로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보통 주변에서 '철이 없다'라고 흔히 말하는 거죠. 저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그것도 최대한 많이요. 사람들이 꾸밈없는 진심을 꺼내어 놓을 수 있는 모임,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해보고 싶고, 누군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책도 쓰고 싶어요. 정말 나중엔 영화도 직접 찍어보고 싶고요. 

그런데 대부분은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이야기해요. 우선은 졸업하고, 우선은 취직하고, 우선은 결혼하고, 우선은 애들 키우고... 뭐 그게 어떻게 보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모래시계는 다 흘러내렸고 박사는 말이 없어졌다. 표정이 굳는 박사를 알아채지 못한 감성 씨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다만, 그런 비현실적인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최대한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려고 해요. 전공과 상관없다 하더라도 제 비전에 맞는 분야 언저리에서 일을 한다거나, 이미 그런 길을 걸어왔던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이러면 이 꿈이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나요,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불안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까?

항상 불안하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취직하면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저는 초조해지고... 하는 일이 막힐 때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나 싶기도 하고... 불안해요.


드디어 명확히 답변하시는군요!

그런데 그 불안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그런 불안을 애써 부정했거든요. '난 불안하지 않아, 아주 좋은데 왜 그래?' 근데 나중에 보니 그게 저를 갉아먹고 있더라고요. 불안을 견뎌내지 못하게 됐죠.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있어요. 어떤 것 때문에 불안하지를 오히려 제 자신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편안해지더군요. 불안이 편안해졌다고 하면 너무 역설적일까요?



 잠시 후 상담실을 빠져나온 감성 씨의 손에는 검사지 한 장이 들려있었다. ENFP. 그것이 감성 씨를 정의하는 가장 완벽한 단어. 그 아래 '재기 발랄한 활동가'라는 별명과 함께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라는 서술이 붙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대부분 맞다. 하지만 감성씨는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과연 이 단어들이 나를 100%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일까? 여전히 불안하고 때론 초조함에 잠 못 이루는 나, 같은 질문에 수십 번씩 달라지는 내 생각들이 성격 검사라는 딱딱한 폼에 완벽히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감성씨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검사지를 가방 속에 꾸겨 넣었다. ENFP, INFJ, ENFP, INFJ, INTJ, ENFP... 구겨진 종이 쪼가리들이 가방을 가득 채웠지만 그 무엇도 감성씨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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