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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Jul 27. 2022

불친절한 의사 선생님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지금까지의 제 인생을 전과 후로 나눈다면 2016년 10월이 그 분기점이 될 거예요. 제가 쓰러진 날입니다. 저는 죽음과 맞닿아있던 그 시간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면서도, 가슴속 가장 깊숙한 곳에 소중히 묻어두었습니다. 그 시간은 인생에서 '답'만 찾던 제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알려줬거든요.


이런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신 분이 있어요. 제가 생각했던 의사 선생님은 환자들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포근하신 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분은 아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면, 그런 건 의료진에 맡기라며 무심하게 답하며 가버리곤 하셨거든요. 심지어 회진을 도실 때 환자가 누워있거나 자리에 없으면 혼을 내셨습니다. 왜 이리 힘이 없냐고 말이죠.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선생님이 올 때마다 끙끙 몸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치료를 받고 후유증으로 앓고 있던 아침이었습니다. 주치의였던 그분은 어느 때처럼 회진을 도셨죠. 원래라면 몸을 일으켰겠지만 그날만큼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제 차례가 되어 오셨을 때, 선생님은 저를 힐끗 보시고 경과가 적힌 차트를 휙휙 넘겨보셨죠. 


또 한 소리 듣겠구나


라고 생각할 무렵 선생님은 뜻밖의 한 마디를 던지셨습니다.



"매일 아침 널 위해 기도하니 한 치의 걱정도 갖지 말아라"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매일 새벽, 환자들의 차트를 보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저 표현하지 않을 뿐이었어요. 저는 선생님의 걱정 말라는 그 이야기가, 그저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갖고 있던 의심과 걱정이 물 녹듯 사라졌죠.





얼마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 선생님을 뵀습니다.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 진료라고 하셨죠. 정년퇴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무서워 말도 못 붙이던 저는 그제야 그 분과 짧게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했어요.


"너는 치료한 환자들 중 아주 특 A급이다. 내가 잘 치료했으니 잘 살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가 있었던 것도, 위험할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잘 넘겼다. 그러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열심히 살아라"


문을 닫고 나오면서 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처럼 여전히 삶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던 저는, 병원을 나오면서 '확신'이란 단어를 되뇌일 수 있었습니다.



생명의 은인이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시는 선생님! 항상 감사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은 선생님이 그러하셨듯, 누군가가 느꼈을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덜어내는 일이겠죠. 그렇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저만의 방식인 콘텐츠와 기획으로, 선생님이 하신 일을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믿어요. 그렇게 해낼 수 있으리란 것을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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