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무서운 속설에도 아랑곳없이 공짜엔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대가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인류가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해온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자연’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소유권의 부재에서 발생했다. 자연에는 소유권이 없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먼저 차지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늦으면 더는 이용할 수 없다. 자원이라고 불리던 공공의 자연은 먼저, 더 많이 차지하려는 자들의 다툼으로 빠르게 죽어갔다. 드넓은 바다의 물고기들은 무자비한 남획으로 씨가 말랐다. 주인 없는 하늘은 온갖 연기와 먼지의 배출구가 됐다. 생태계는 자정이 불가할 수준까지 무너져갔다. 자연을 신의 선물로 여기며 정복하고 이용해 온 중세를 지나, 시장을 만들고 인류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현대 사회까지, 공유지의 비극은 ‘자원’에서 ‘자연’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인류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늘 경쟁해왔다. 자원은 한정적이다. 경쟁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자원은 경쟁에서 이기고 비용을 치러야 얻을 수 있었다.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됐다. 이러한 경쟁 시스템은 인류의 ‘공짜 중독’을 유발했다. 공유지가 가진 비배제성은 인류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경합성은 단순한 ‘선착순’을 의미했다. 치열한 경쟁이나 대가 없이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자연은 만만한 사냥감이었다.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 지쳐있던 인류에게 공유지는 '비용이 필요 없는 듯’ 보였고, 결국 그 중요성에 대한 인류의 합리적 판단조차 흐려지게 만들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연과 자원을 아끼고 보호해 줄 여유는 없었다. 오늘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내일은 굶어야 하는 경쟁의 치열함이 만선의 갑판 위에서 한 번 더 그물을 내리게 만들었다.
모든 자연은 소유돼야 한다. 다만 재산권 행사를 위한 개인의 소유가 아닌, 보호권 보장을 위한 사회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자연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형성해온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방치하면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된다. 개개인의 윤리적 판단과 자유의지에만 맡길 수 없다. 제도를 통한 공동체 차원의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 어획이나 벌목 등 자연에서 자원을 얻는 일은 통제받아야 한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시기와 횟수를 제한하며, 자원의 활용과 폐기에 대해선 더욱 엄격한 규제를 해야 한다. 개발은 당장의 비용-편익 계산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자연과, 자원과, 생태계에 관련된 모든 것은 통제받아야 한다. 자유시장의 논리로 망가진 자연은 공동의 소유와 계획 경제 같은 사회주의 방식으로라도 회복되어야 한다.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일이다.
인류는 지구 상 그 어떤 종보다 똑똑하다. 지성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며 이 행성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류는 가장 바보 같은 행동을 지속해왔다. 문명이란 이름아래 경쟁적으로 자연을 파괴했다. 경쟁에 치이고 이익에 눈이 멀어 공유지의 비극을 만들고 확장시켜왔다. 공유지의 비극은 경제적 개념이 아닌 환경과 생존의 문제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인류의 의지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