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멈췄다. 안에서 시끄러운 여권과 밖에서 농성하는 야권은 본분을 망각했다. 정치적 투쟁도 국회의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외에 더 중요한 기능은 마비된 지 오래다. 국민의 요구엔 복지부동한 식물이 되었다가, 본인들의 이해가 직결된 문제 앞에선 사나운 동물로 변한다. 힘겹게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이다. 국회의 존재 의의에 대한 깊은 실망감에 빠진 지금의 한국 사회는 졸속 민주주의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한복판에 있다.
국회는 입법 기능을 수행한다.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리인으로서 법을 만든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법을 통해 특권을 만들어냈다. 당선된 국회의원에겐 수많은 특혜와 특권이 보장된다. 그들 스스로 의석수와 선출방식과 월급과 보좌진의 수까지 정한다. 명예와 특권의 맛을 본 국회의원들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들여가며 다음 선거에 나선다. 임기 중 특권을 박탈할 방법은 전무하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4년을 기다렸다가 단 한 표로 심판하는 것뿐이다. 주인인 국민이 대리인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기 위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별개로 국회의원의 일부 특권은 여전히 보장받고 있다. 국회의원이 누릴 수 있는 대표적 특권이 면책특권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언어와 표결로 일한다. 자신을 선택한 주인의 뜻을 충실히 대변하기 위해 말하며, 국민에게 필요하거나 필요 없는 법안을 판단해 표결한다. 면책특권은 국회 밖에선 시민으로 돌아갈 국회의원들이 외부위협 없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호한다. 면책특권은 사실상 특권보다는 안전장치에 가까우며, 이런 최소한의 특권조차 없이 국회의 적극적 정치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특권 유지의 논리다. 대의제를 선택한 한국 사회의 필연적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권의 축소와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군사독재 암흑기를 지나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다.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공인이다. 다수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국회의원의 발언엔 표현의 자유를 무한히 인정할 수 없다. 정치권에 만연한 막말은 ‘직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단순한 정치적 견해 표출을 넘어서 발언에 혐오, 차별적 내용이 포함된다면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 발언의 수위에 따른 처벌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회의 모든 표결은 실명투표로 전환해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의 책임을 명백히 함으로써 표결과정에서 국민의 요구를 더 신경 쓰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회에 대한 분노를 넘어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국민들에겐 국회가 필요하다. 밉다고 없앨 수 없다. 국회는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자리는 존엄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특별하다면, 대리인의 권한도 특별해야 한다. 단, 주인이 납득할 만큼의 권한만 갖고 제대로 일하는 것이 충실한 대리인의 역할이다. 주인은 언제든지 대리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국회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