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by 차구마

어느 지식인의 서재에는 진리가 가득 차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류의 고귀한 지식들이 책장에 빼곡하게 쌓여있다. 서재 한쪽엔 이른 아침 짙은 커피 향을 풍기며 날카로운 눈으로 조간신문을 살피는 지식인의 책상이 있다. 나라의 걱정거리를 훑고 통찰을 끄적이는 연필과, 그것을 몸에 새겨 받아내는 원고지도 그 책상 한 구석에 놓여있다. 10번은 정독했을 낡고 두꺼운 고전 서적과 요즘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켜켜이 쌓여 다른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지식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어느 지식인의 서재는 나라의 귀중한 보고다.


도시 한 가운데 널찍이 자리 잡은 지식인의 집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식인의 서재는 충분히 넓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내치지 않고 받는다. 다과며 과일이 부지런히 소모되고 채워지며 다과상을 둘러싸고 늘 북적거린다. 손님들의 눈빛은 사회를 움직이는 지식인의 혀와 손끝에 매달려 떨어질 줄 모른다. 무거운 표정으로 빈부격차와 실업률과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그들은 80평 마당 딸린 집에 모여 앉아 대륙의 고급 찻잎으로 우려낸 차를 마시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낸다. 파업 노동자들이 널브러진 대로를 밟고 도착한 지식인의 마당 딸린 집엔 늘 경세가와 석학들이 북적인다.


지식인의 서재는 지식을 받아들여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작동되는 공장은 좀처럼 쉴 줄 모른다. 수많은 지식 자료들이 지식인의 우월한 두뇌를 거쳐 재생산되고, 그 지식들은 종이와 목소리와 영상에 실려 다시 퍼져나간다. 지식인은 말과 글로 밥을 벌어먹는다. 항상 켜진 모니터엔 집필 중인 책의 원고가 퇴고를 기다린다. 이번 주 출연할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준비 자료는 한 쪽에 두껍게 쌓여있다. 다음 책으로 사회통합을 심오하게 통찰하고, 다음 방송으로 불평등을 깊이 있게 성찰한다. 지식인의 손과 이름으로 쓴 책은 나온 즉시 전국 서점의 선반을 점령해가며 이름 없는 작가의 부족한 책의 자리를 밀어낸다. 노동자 빈곤을 우려해주고 지식인이 받을 돈은 방송국 계약직 노동자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다. 지식인은 지식으로 밥을 먹고, 밥을 뺏는다.


어느 지식인의 서재는 나라의 귀중한 자산이다. 큰 마당이 보이는 서재에는 볕이 들고 바람이 통하고 온기가 흐른다. 나라의 훌륭한 지식인의 서재에는 지식과 사람과 돈과 밥이 있고, 현실과 변화와 결단과 움직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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