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허상

by 차구마

중산층을 희망하던 세대들이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취업은 어렵고, 집값은 치솟고, 경제는 언제나 위기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길을 탈선하면 나락이었다. 단 한 번의 인생,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도전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욜로’의 구호도 공허할 뿐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인위적 정책의 산물이었다. 70년대 독재정권은 최빈국 수준의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나라에서 기업을 육성했으며, 끊임없이 부수고, 짓고,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투입대비 경제적 효과가 큰 중간계급을 의도적으로 육성했다. 오늘날 중산층으로 불리는 계급이었다. 핵심은 ‘집’이었다. 국가는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 중산층에 보급했다. 중산층은 깨끗한 내 집을 가졌고, 빈민들은 쫓겨났다. 빈민들은 경제 발전이라는 국가의 위대한 목표 앞에 삶의 터전을 내주고 방황하며 죽어갔다. 누구나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당시의 희망적 구호는 빈곤한 누군가에게 실체 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세월이 지나며 시대가 변했다. 중산층의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개발독재의 산물인 중산층은 현대사회와의 접점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빈곤이 만연하고 양극화는 극심하다. 중산층이라는 환상이 깨지며 욜로라는 소비문화가 등장했다. 취업과 연애, 결혼까지 많은 것들을 포기한 청년세대 중심의 문화였다. 삶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단 한 번의 삶에서 당장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삶의 방식을 전환하려는 신선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작동방식은 그대로다. 삶에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명확하다. 엄청난 용기를 내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욜로의 삶에 도전할 수 있고, 그마저도 대부분 실패하여 현실로 돌아온다. 중산층이 되리란 희망과 마찬가지로, 욜로로 살기는 아직 환상에 불과한 수준이다.


결국 구조적 문제다. 중산층 환상의 실패는 양극화를 유발하는 경제 시스템, 욜로 환상의 공허함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원인이다. 중산층으로서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삶이나 욜로로 내면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며 도전하는 삶을 개인이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개인을 뒷받침해줄 사회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개인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와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개인이 살아갈 방식의 자유가 생산성과 창의성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결국 공동체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할 일은 개인의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로부터 보호해주는 포용적 정책 수립이다.


개인의 좌절은 국가의 추락으로 이어진다. 시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국민들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다. 이젠 새로운 희망을 주고 환상을 실현시켜야 한다. 이미 깨져버린 중산층의 환상을 회복하고, 욜로라는 환상을 허상으로 남기지 않도록 범국가 차원의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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