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by 차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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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비가 좀 내린 것 같았다. 흙이 아직 축축하게 젖어있었으니까. 어쩐지 부쩍 납작해진 것만 같은 봉분 위, 지난해부터 두텁게 쌓였을 낙엽과 넝쿨을 갈퀴로 긁어낸다. 널브러진 흙과 돌과 풀은 손으로 직접 쓸고 줍고 뽑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짝이 뻐근해져오는 찰나 슬쩍 드는 생각.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글쎄.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이제 슬슬 게으름이나 좀 피워볼까 하는데, 여태껏 허리 한번 펴지 않고 낫질을 하던 늙은 아부지가 무덤을 다독이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좀만 더 기다리쇼. 기회 되면 더 좋은 곳으로 모실게.”


부재한 것을 향하던 그 쓸쓸한 혼잣말이, 혼잣말 아닌 혼잣말 같은 것들이, 그때부터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빠, 엄마. 살아서 그러한 것들은 죽어서도 변함없이 그러하다는 것.


그러니까 잠깐 숨을 고르면서 아부지와 엄마가 실없이 주고받던, 약간의 한숨도 섞여있던, 그런 끔찍한 농담들,


당신은 죽으면 어디에 있고 싶나? 납골당? 수목장? 하던 말들이,

어디 묻히면 뭐해 우리 죽으면 애들이 찾아오기나 하겠어? 하던 말들이,


내가 늙어서도 갈퀴나 낫을 잡고 잡초를 긁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언젠가 굵은 땀 흘리는 것으로 때늦은 눈물을 대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들.


“다 했으니 이제 슬슬 가자. 내일 또 비 온다는데 흙이나 꾹꾹 밟고 가자.”


모르긴 몰라도 산 사람의 세계는 죽은 사람의 세계까지 무성하게 얽혀있나 보다. 뽑아도 자꾸만 자라나는 보고픈 마음, 세월에 꾹꾹 밟힌 그 마음 여태 무너지지 않고 그토록 단단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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