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by 차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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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한 구름이 뭉치고 두꺼워지면 비가 내릴 것이다. 평생 그치지 않을 것처럼 비는 며칠이고 세차게 내릴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발바닥까지 잠기고, 어쨌거나 장마는 요란하게 시작될 것이다.


그 여름 두꺼운 구름처럼 당신이 모여들었다. 손바닥을 크게 펼쳐도 가릴 수 없이 커져버린 당신은 별안간 내게로 퍼붓기 시작했다. 당신이 쏟아졌다, 출렁거렸다, 넘쳐흘렀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며 첨벙이던 당신은 어느새 내 발목까지, 무릎까지, 허리에서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었다. 오랫동안 멈추지 않으리라 믿었고, 그래서 나도 당신을 향해 쏟고 또 쏟았던, 우리는 서로의 장마였다.


그 여름 지나 두꺼운 구름은 차츰 흩어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쏟아지지 않았고, 출렁대지 않았고, 넘치지 않고 조심스럽게만 흘렀다. 뜨거운 햇살 아래 문득 부끄러워진 당신과 나, 젖은 마음을 천천히 말리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어.

장마는 조금 오래 내리는 비일 뿐이야.


축축했던 우리의 세계는 빠르게 말라갔고,

그때 나는 차라리 맑게 갠 하늘을 원망했던 것 같다.

너무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미워했던 것도 같다.


바람 따라 움직이다가, 한없이 비를 쏟아내다가, 언젠가 흩어질 구름의 마음이야 누군가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왜 벌써 개어버린 건데. 너무 빨리 마르고 갈라진 건데.


그리고 왜 다시 쏟아지려는 건데.


알 수 없는 물음을 남겨두고 구름이 흩어지면 비는 곧 그칠 것이다. 며칠이면 바닥은 마르고 각자의 발바닥은 다시 무언가를 찾아갈 것이다. 우리는 괜스레 조금만 더 젖어 있다가 햇볕 아래로 뛰쳐나갈 테고, 어쨌거나 요란했던 장마는 조용히 끝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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